2000년대에 등단한 20-30대 젊은 시인들이 첫 시집을 잇따라 내놓았다. 박진성(27)의 '목숨', 이창수(35)의 '물오리 사냥', 고영(39)의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가 최근 천년의시작사에서 한꺼번에 출간됐다. ▲박진성 시인은 2001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그는 이십대의 젊은 나이지만 수년째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투병 중이다. 밥보다 약이 더 친숙한 나날을 보내며 쓴 시들이 이번에 첫 시집 '목숨'으로 묶여 나왔다. "발작은 지문에서 시작한다/소용돌이치는 회오리바람 흉부로/숨길 수 없는 혈통을 실어 나른다/혈관들이 부풀어오르고/길길이 날뛰는 벌레들의 수런거림,/아버지벌레가 어머니벌레를 잡아먹는다"('공황발작' 중)거나 "태백을 관통하는 불안은 경포호 수면에 이르러서야 고요해진다 수면 털고 일어서는 새떼들은 어떤 경계의 짐짝들을 자꾸만 파닥거리는지 해발 영 미터의 바람이 여인숙 창틈으로 불어온다"('고소공포증' 중)는 시편에는 병적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박 시인은 서문에 "이제 병은, 내가 싸워야 할 어떤 대상이 아니라 내가 끌어안고 동시에 내가 거느려야 할 뿌리임을 알겠다"고 적어놓았다. ▲2000년 '시안'으로 등단한 이창수 시인은 첫 시집에서 현대산업문명의 짙은 그늘 아래 뿔뿔이 흩어져버린 가족공동체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할머니를 중심으로/우리 가족은 카메라를 보고 있다/아니, 카메라가 초점에 잡히지 않는/우리가족의 균열을/조심스레 엿보고 있다"('가족사진' 중)거나 "몇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한 마리 염소만 남아 빈집을 지키고 있다"('고집 센 염소'중)고 노래한 시편에는 따뜻한 가족애의 회복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과 함께 "촌스러움과 넉살"(문학평론가 이승하)까지 담겨 있다. ▲고영 시인은 2003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했다. 첫 시집에는 신산한 삶 속에서도 물처럼 여린 마음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시인의 순결한 시정신이 곳곳에 묻어 있다. "식은 밥 한 덩이/하늘 가운데 불쑥 떠올랐다//식은 밥이라도 한 숟가락 퍼먹으면/유년의 주린 배가 불러올까"('달' 중)라거나 "견디지 못할 체중이란/이 세상엔 없다/다리몽둥이 썩어가는 살 속/그 작은 틈새로/물고기들이 몰려와 알을 낳는다"('강물을 앉힌 소파' 중)거나 "내 귓속에는 막다른 골목이 있고,/사람 사는 세상에서 밀려난 작은 소리들이/따각따각 걸어 들어와/어둡고 찬 바닥에 몸을 누이는 슬픈 골목이 있고"('달팽이집이 있는 골목' 중)라고 노래한 시편은 세상의 구석에 가려 있는 낡고 하찮은 것에서 삶의 진정성을 찾아내는 시인의 예민한 촉수를 보여준다. 각권 120쪽 내외. 각권 6천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