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가 '고유가'라는 복병을 맞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만큼 고공행진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위기불감증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고유가 충격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다. 가장 큰 요인은 유가와 미 달러화간의 대체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고유가가 달러화 강세와 맞물렸기 때문에 원유수입국들은 유가상승에 따른 인플레 요인이 자국통화 가치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분까지 겹쳐 물가가 크게 불안했었다. 반면 이번에는 달러화 약세로 원유수입국들은 유가상승에 따른 인플레 요인을 자국통화 가치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하락으로 흡수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상품시장의 공급과잉 상태가 워낙 심해 유가상승에 따른 원부자재 가격 인상분을 최종재 가격에 전가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도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 충격을 완화시키는 요인이다. 세계주력산업이 원유다소비형의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원유절약형 정보기술(IT)산업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고유가 충격을 흡수하는 요인이다. 또 세계경제가 기술혁신과 고용감축을 통한 생산성 증대가 새로운 성장동인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고유가 부담을 완충시키고 있다. 원유수입국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계층별 소득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는 것도 고유가 충격을 흡수하는 원인이다. 소득수준 향상과 절대적으로 원유수요가 많은 고소득 계층일수록 현금흐름이 개선됨에 따라 유가가 상승하더라도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 더욱이 1970년대 제1·2차 오일 쇼크때와 달리 중동국을 비롯한 산유국들이 고유가에 따른 소득증가분을 비산유국으로부터 상품수요를 크게 늘림에 따라 고유가 충격을 산유국들이 자체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우리도 갈수록 중동지역에 대한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자본거래면에서도 고유가에 따라 원유수입국(대부분 아시아 국가)에서 지출된 산유국들의 흑자분이 미국의 자산시장으로 유입되는 선(先)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이 때문에 또하나의 세계경제 현안인 미국과 아시아 국가간의 경상수지 불균형을 자본수지면에서 보완해줌으로써 국제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번 고유가의 최대 피해국이 될지 모르는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유가상승과 달러화 약세까지 겹쳐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유가상승에 따라 가뜩이나 위험수위가 넘은 쌍둥이 적자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런 상황을 맞아 미국이 선택해야 할 정책방향은 명확하다. 대내적으로는 종전의 기조대로 금리를 인상해 인플레 압력을 완화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대외적으로는 원유수입국을 대상으로 시장개방 압력을 높여 나가는 동시에 석유수출국기구(OPEC)내 온건회원국을 대상으로 증산노력을 추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번 고유가에 따른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미국의 경제정책 방향을 감안해 볼 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느 정도 감지된다. 거시적으로는 안정보다는 지금의 기조대로 경기회복에 중점을 두되 상대적으로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이는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대외적으로는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