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환시장에 헤지펀드 주의보가 발령됐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단기수익을 챙기는 헤지펀드들이 한국의 원화를 '먹잇감'으로 노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엔디 시에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24일 대만의 한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헤지펀드 업계의 한국과 대만 외환시장 공략이 가시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양국 외환당국의 환율 방어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통화가치는 강세(환율은 하락)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늘어나면서 여기에 '몰빵'을 하는 투기자본들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현재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과 외환시장 상황을 볼 때 원화 강세라는 한 방향으로만 투자하기엔 너무 리스크가 크다"며 "시에의 주장은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가설"이라고 평가했다. ○'한은 해프닝'으로 촉발 외국의 주요 헤지펀드들은 최근의 한은보고서 해프닝과 같은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에의 경고에는 앞으로 상당기간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깔려 있다. 2천억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액을 감안할 때 투자다변화는 불가피하고 이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정 부분의 달러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는 것.원화 환율이 떨어지더라도 통화당국이 큰 폭으로 달러 매수개입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환율 방어로 인한 비용이 한계점을 넘어섰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헤지펀드의 투기 메커니즘 지난 2003년 이후 헤지펀드의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는 것도 불안요인이다.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로 유동성이 크게 늘어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들이 헤지펀드로 대거 몰려들었다"며 "이들 자금이 높은 수익을 좇아 세계 곳곳을 떠돌아 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의 유가상승도 이런 헤지펀드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같은 헤지펀드의 자금이 한국의 원화를 노릴 경우엔 크게 세 가지 경로를 거치게 된다. 우선 달러를 팔아 주식이나 채권 등 국내 원화자산을 구입한다. 그리고 막대한 달러를 일시적으로 외환시장에 투입,환율 하락을 유도한다. 충분히 환율이 낮아졌다고 판단되면 국내 원화자산을 가치가 크게 떨어진 달러로 바꿔 빠져 나간다. 국내 경제사정이 호전될 경우엔 주식이나 채권 등에서도 재미를 보고 여기에 덤으로 대규모 환차익까지 얻게 되는 셈이다. ○투기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헤지펀드들이 이런 전략을 구사하기엔 국내 사정이 만만치 않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박승 한은 총재는 이날 국회 답변에서 "앞으로 미 금리가 오르면서 달러가 강세로 돌아설 수 있다"며 "4월쯤이면 환율이 오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도 "환율이 일방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만 봐도 조만간 대기업들의 배당금 수요로 원·달러 환율은 상당한 상승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엔·달러 환율이 예상과 달리 견고하게 1백5엔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일방적인 환율하락 전망에 대한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국내 외환시장이 대만에 비해 상당히 개방돼 있다는 것도 헤지펀드를 주춤거리게 할 것으로 전망됐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