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들에 의해채택된 유럽헌법이 20일 스페인에서 본격 시험대에 오른다. 유럽헌법은 이미 헝가리 등 3개국 의회에서 비준을 받았지만 헌법의 최종적인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국가별 국민투표 사례는 스페인이 처음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헌법은 무난히 가결될 전망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무관심이 큰 것으로 드러나 투표율이 현저히 낮게 나올 것으로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투표율 저조는 곧 헌법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번 국민투표는 공식적으로 구속력이 없다. 의회가 비준을 최종 결정하게 돼있다. 그러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는 부결될 경우 유럽헌법에 대한 재협상을 벌이겠다고 이미 공언했다. ◇ EU 회원국 중 첫 국민투표 유럽헌법이 최종 발효되려면 모든 회원국에서 예외없이 비준을 받아야 한다. 원칙대로라면 단 1개국에서도 부결돼도 헌법은 재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헝가리,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에서 비준 절차를 이미 마쳤지만 의회 표결을통했다. 따라서 이번 스페인 국민투표는 유럽헌법으로서는 본격적으로 일반 유권자와 대면하는 첫 관문인 셈이다. 스페인이 EU의 비중있는 국가인 데다 향후 이어질 다른 10여개국 투표에도 큰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번 투표에 온 유럽인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올 여름 이전에 실시한다고만 발표해 놓고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적정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프랑스 여론조사를 보면 가결이 예상되지만 지지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우파 정부는 정책에 대한 불만이 반대표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오는 4월과 내년으로 예정된 네덜란드와 영국 국민투표에서는 일부 EU 정책에대한 여론의 거부감으로 인해 부결이 우려된다. 10개 신규 회원국 중에는 폴란드와체코에서 가결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비준 낙관 속 투표율 저조 우려 최근 경제지 '엑스판시온'에 실린 입소스(Ipsos)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80%안팎의 찬성률이 나올 것으로 낙관된다. 집권 사회당은 물론 야당인 제1야당 대중당도 모두 지지한다. 분리 독립을 모색하는 바스크 지방의 주요 정당들도 독립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기대로 헌법에 찬성한다. 다만 극좌 정당 연합좌파가 유럽헌법이 사회문제를 소홀히 다뤘다며 반대하고있다. 카톨릭은 헌법에 유럽의 기독교적 유산이 언급되지 않았다며 소극적인 방식으로 신도들의 기권을 당부해 온 정도다. 문제는 일찌감치 예고돼 온 투표율 저조 우려다. 입소스 조사에 따르면 투표율50% 미만이 예상된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의 기권율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여론 조사에서는 90%가 유럽헌법 조항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이런 현상은 유럽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투표율이 40%만 되어도 정부로서는 성공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 투표율 제고와 가결 위해 총력 스페인 정부는 유럽통합 적극 지지론자인 사파테로 총리의 진두 지휘로 투표율을 높이면서 비준을 이끌어내기 위한 총력전을 펼쳐왔다. 헌법 문안 500만부 이상을 배포했으며 사회당과 대중당이 관여한 찬성을 위한집회가 1천건 이상 열렸다. 요한 크루이프 같은 왕년의 축구 스타들과 다른 유명인들도 홍보전에 동원됐다. 헌법 지지를 유도하는 상표명을 붙인 음료수도 출시됐다. 인근 프랑스와 독일 정상들도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고 있다.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1일 바르셀로나를 찾아 "모든 유럽의 본보기가 돼 달라"고 호소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16일 스페인 북동부 사라고사에서 열린 사회당집회장으로 달려가 강한 유럽 건설을 위해 찬성표를 던져달라고 촉구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17일에도 RNE 라디오와 회견에서 통합 외교정책 실현 등 유럽헌법이 담고 있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참여와 찬성을 거듭 당부했다. (파리=연합뉴스) 이성섭 특파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