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62) 하나은행장과 황건호(54) 증권업협회장은 각각 금융시장과 증권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다. 김행장은 올해로 금융계에 발을 들여놓은지 40년째고 황회장은 내년에 증권 인생 30주년을 맞는다. 현역 중에서 이 두 사람만큼 자금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이를 찾기 어렵다해도 과언은 아닐듯 싶다. 때마침 '금융전쟁'이 운위되는 터라 2005년 벽두에 두 사람을 초청,한국경제 전반과 금융권 현안에 대해 대담을 부탁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대담은 덕담이 오가며 시작됐다. 그러나 은행과 증권업계의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에서는 한치의 양보 없이 예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 김승유 하나은행장 ] 1943년 서울 출생 경기고 고려대 경영학과 한일은행 미국 남가주대(USS) 경영대학원(MBA)졸업 한국투자금융 입사 한국투자금융 전무 하나은행 전무 97년~하나은행장 [ 황건호 증권업협회장 ] 1951년 강원도 평창 출생 용산고 서울대 경영학과 대우증권입사 대우증권 뉴욕사무소장 미국 럿거스 대학원(경제학 졸업) 대우증권 부사장 메리츠증권 사장 2004년2월~현재 증권업협회장 -------------------------------------------------------------- ○김승유 행장=많은 사람들이 올해 경제도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저는 역설적으로 그 자체를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97년 외환위기 직전에는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이 "한국경제는 펀더멘털이 건실해 괜찮다"는 식으로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이들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게 어려움을 키운 겁니다. 요즘은 언론을 비롯해 곳곳에서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그러다보니 정부도 발빠르게 대책마련에 착수하는 모습입니다. 모두들 비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게 역으로 '최악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전망을 가능케 하는 것이죠. ○황건호 회장=지난 48개월간의 지표를 살펴보니 경기가 계속 횡보하거나 오히려 뒷걸음치는 모습을 보였더군요.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최근들어 미약하게나마 가계부문의 저축이 늘어나고 개인부채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05년에는 가계부채 문제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면서 해결국면에 접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국제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환율하락,세계경제 침체 등으로 경제운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중국이 여전히 8%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요소가 많은 편입니다. ○김=최근 수년간 경기가 횡보 내지는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 2000∼2001년에 진행됐어야 할 경기하강을 가계신용으로 메운 데 따른 부작용에서 기인한 겁니다. 대가를 한꺼번에 치르는 셈이라고 할까요. 이같은 부작용은 올해 상반기가 지나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황=한국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것은 우리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산업이 소프트해지고 있는 데 따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정보기술(IT)분야지요. IT부문은 대규모 투자를 동반하지 않는 분야입니다. 때문에 IT 위주로 우리의 산업구조가 재편됐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루기는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얘기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우리 경제의 또 다른 특징은 수출의존도가 높고 주력업종이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5대업종에 집중돼 있으며 하청계열화 돼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원화절상에도 끄떡없을 정도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앞으로 성장지속 여부의 관건이 될 겁니다. 특히 대기업과 하청기업이 원화절상의 대처비용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를 놓고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엔고 시기에 일본의 대기업들은 기술지도부터 시작해서 하청업체와 공존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죠.반면 우리 대기업들은 원화절상에 따른 부담을 거의 대부분 중소기업에 전가하고 있습니다. ○황=외환위기 후 은행들의 대형화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국내은행의 경쟁력이 세계적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제조국가인데 금융쪽에서는 아직 그런 삼성전자 같은 대표기업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은행의 공공성이 담보된 것도 아닙니다. IMF외환위기 직전에는 지나친 공공성의 강조로 제조업을 위해 금융이 희생당한 측면이 있었죠.그러나 IMF를 겪으면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나치게 상업성이 강조됐습니다. 저는 은행의 상업성이 바탕이 된 가운데 공공성도 충분히 강조돼야 한다고 봅니다. 개별 금융회사의 수익성과 자체 생존력은 강화됐는데 금융이 책임져야할 공공기능,자본조달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겁니다.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김=금융회사가 상업성과 공익성을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국제경쟁력 문제에 대해서는 금융업의 속성을 이해해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가끔 신입행원들이 "왜 은행들 가운데는 세계적인 기업이 안나오나"라는 질문을 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금융은 신용을 파는 장사다. 하나은행의 신용도는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넘어설 수가 없다. 따라서 하나은행과 씨티은행을 놓고 비교하면 자금조달 코스트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다시말해 금융업의 특성상 개별기업의 역량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경쟁력의 한계가 있다는 얘깁니다. 금융은 또 리스크 관리측면에서 확률의 게임이기도 합니다. 리스크 관리 능력은 결국 사람의 문제이고 데이터베이스(DB)의 문제입니다. 재무제표는 그 기업의 증후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참고자료에 불과합니다. 우린 아직 외국 선진은행들에 비해 역사가 1백년이상 뒤처져 있어요. 앞으로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외국은행들의 역량을 따라잡아야죠. ○황=금융회사가 국제경쟁력을 가지려면 대형화 전문화는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금융산업 재편 움직임은 너무 은행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만 진행돼 왔습니다. 옳고 그른 차원을 떠나 드러난 현상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증권산업은 여전히 규제산업으로 남아있습니다. 소외돼 왔다는 것이죠.증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증권회사가 과도한 규제를 받다보니 '자본시장의 미성숙'이라는 문제가 야기되는 겁니다. 기업들의 자본조달 기능이 취약해졌어요. 은행의 보수적이고 안전을 추구하려는 성향은 증권회사에 대한 규제완화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김=금융산업이 은행위주로 재편되고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외형적으로 살펴봐도 그래요. IMF를 지나면서 은행의 숫자는 줄어든 반면 증권회사의 수는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금융권 총자산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60%를 넘지 않아요. 결국은 모든 인식을 금융소비자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고객에게 유리할 것인지만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결국 지주회사체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요.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합병과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적절한 계열화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황=지난해 주식시장은 선방했습니다. 폐장일 지수가 연초에 비해 10.5% 상승했죠.4%대를 기록한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저는 이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는 과정이죠. 작년 2월 협회장으로 처음 와서 가장 걱정했던 게 우리 주식시장의 외국인 편중현상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주식시장의 43%를 점유하고 있는 불균형 현상이 앞으로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했죠.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올 하반기 들어 기관이 본격적인 매수에 들어갔고 무엇보다 개인들의 우량주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전자 포스코 같은 우량주는 사서 묻어두면 괜찮겠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죠.이는 적립식 펀드 상품이 2조원가량 판매됐다는 점에서도 증명됩니다. 지난 4월 '차이나쇼크'때 종합주가지수는 936에서 719까지 빠졌어요. 지난 10월에도 유가 및 환율쇼크 등으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는데,외국인들은 대거 매도에 나섰지만 지수는 800대를 유지했습니다. 새로운 수요가 생긴 것입니다. ○김=수급면에서 호재가 많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마땅한 대체 투자수단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죠.한국의 우량주식만한 주식을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요.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주식시장에 투자할 때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들어오고,기관이 그 뒤를 이으며,개인들이 마지막에 참가해 '꼭지'를 잡는 전통적인 악순환은 여전히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악순환을 타파하려면 개미투자자들에 대한 투자교육이 필요합니다. 기업들도 배당정책을 재고해야 합니다. 대주주들이 소액주주에 대해 동업자 의식을 가져야해요. 그저 '푼돈이나 주면 되지'라는 식의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리=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