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 80년대 이전과는성격이 다른 `석유 무기화'가 가시화되고 있으며 올해도 그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뉴욕 타임스가 3일 전망했다. 신문은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일 당시만 해도 석유가 `원자재의 하나'로 인식됐으나 지난해 10월 서부텍사스중질유 기준으로 기록적인 56달러 수준에 이를 정도로 가격이 폭등하면서 또다시 `정치적 원자재'로 부각됐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옥스퍼드 인스티튜트 퍼 에너지 스터디스의 로버트 마브로 소장은 뉴욕 타임스에 "석유가 정치적 원자재"라면서 "이제는 석유시장을 전망할 때 지정학적 변수를핵심 요소로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73-74년과 78-81년의 두차례 `오일 쇼크'를 상기시키면서석유 무기화가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과거와 성격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즉 과거에는 이란이나 리비아 같은 정통 이슬람 국가들이 석유 부문을 국유화하는 식으로 서방에 타격을 줄 경우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석유수출국기구(OPEC)내 온건국들이 산유량을 늘리는 식으로 그 충격을 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 어 지난 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도 이런 식으로 해결되는 바람에 석유시장에 미친 충격이 몇주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상황이 달라졌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석유 수급에 근본적인 변화가 초래됐기 때문이다. 석유 수요는 해가 갈수록 급증해온 반면 OPEC 회원국들의 유전 개발이 제대로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공급이 달리기 시작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즉 주요 산유국들이 사실상 풀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나 베네수엘라, 이란,러시아 및 나이지리아 등 상대적으로 정정이 불안한 국가들의 석유 부문에서 차질이빚어질 경우 그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휴스턴 소재 라이스 대학의 에너지프로그램 담당 에이미 제퍼는 뉴욕 타임스에"석유가 또다시 정치 무기화됐다"면서 사우디 유전도 테러 공격에서 안전하지 않으며 이란 핵개발로 인한 불안과 나이지리아 소요, 그리고 이라크 사태 등이 주요 변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세계 경제가 침체될 경우 석유시장에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면서지난 2000년까지 배럴당 평균 30달러대이던 유가가 지난해에는 41달러대로 치솟았음을 상기시켰다. 제퍼는 지난 81년 석유 파동때 기록됐던 유가가 인플레를 감안할 때지금 수준으로 배럴당 80달러대였기 때문에 유가가 더욱 폭등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우려했다. 런던 소재 센터 퍼 글로벌 에너지 스터디스의 레오 드롤러스 수석애널리스트도뉴욕 타임스에 "올해 유가가 지난해보다 더 높아질 것을 본다"고 말했다. 석유 수급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석유업계 전망도 어둡게 나온다. 영국석유(BP)의 존 브라운 최고경영자는 뉴욕 타임스에 "앞으로 몇년간 유가가30달러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옥스퍼드 인스티튜트의 마브로 소장도 "정치적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올해 유가가 평균 45달러 수준이 되지말란 법이 없다"고 내다봤다. 뉴욕 타임스는 석유시장에서 OPEC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대신 상대적으로 노르웨이나 멕시코같은 OPEC 역외 산유국들의 역할이 커질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하루 평균 8천200만배럴이던 세계석유 소비가 오는 2030년에는 1억2천100만배럴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현재 세계 석유수요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하는 OPEC가 2030년에 공급하는 비율도 50% 가량으로 늘어나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우디, 쿠웨이트 및 이란처럼 원유 매장량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OPEC 회원국들이 유전개발 투자와 산유량을 대폭 늘린다는 전제조건이 물론 뒤따른다고 IEA는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80년대초 한때 하루 1천500만배럴 가량이던 OPEC의 잉여 생산력이이제는 약 200만배럴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 현실임을 감안할 때 OPEC가 과연 급증하는 석유 수요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부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OPEC가 올상반기중 잉여 생산량을 하루 300만배럴 수준으로 늘리게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OPEC 쪽에 지나치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견제론도 제기된다. 드롤러스는 "OPEC가 이달중 긴급회동해 석유수급 상황을 재점검할 예정"임을 상기시키면서 "이들이 말로는 수급 안정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악어의 눈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선재규 기자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