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3일은 한국의 정보통신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날이었다. SK텔레콤과 일본의 MBCo가 공동 소유한 세계 최초의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용 위성인 '한별'이 성공리에 발사된 날이기 때문이다. 지구 밖에서 다채널 멀티미디어 방송 전파를 쏴주는 한별이 안착됨에 따라 PDA(개인 휴대용 단말기)나 차량용 수신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멀티미디어 방송을 즐길 수 있는 위성 DMB서비스가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한별의 안착은 삼성전기에 새로운 기회를 안겨줬다. 향후 엄청난 크기로 성장할 위성DMB 튜너 시장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위성DMB 튜너는 DMB서비스를 수신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부품. 삼성전기는 곧바로 사내 벤처 조직인 거북선센터에 '세계 최소형 DMB튜너' 개발을 목표로 'CFT(Cross Functional Team)'를 구성했다. 이들이 수행하는 프로젝트는 '레판토(Lepanto)'로 이름지어졌다. 레판토란 1571년 에스파니아와 베니스 연합군이 지금의 터키인 오스만제국과의 해전에서 승리한 전투 이름.에스파니아와 베니스 연합군처럼 튜너 기술과 LTCC(저온 동시 소성 세라믹) 기술을 연합해 세계 최고의 DMB튜너를 개발하자는 이유에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초소형 DMB튜너는 기판형태의 LTCC 위에 튜너를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연구진간 협력이 관건이었지만,두 기술이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게 문제였다. 튜너의 경우 '설계를 얼마나 세밀하게 하느냐'가 핵심이지만 LTCC는 '얼마나 더 얇고 작은 기판을 만드느냐'에 성패가 달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품업체의 경우 서로 다른 사업부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전례가 거의 없었다. 연구진간 충돌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삼성전기 정대영 수석원구원은 "논이 아닌 밭에 벼를 심어 벼를 무르익게 만들어야 했으니 연구원들간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잦았다"며 "연구 초기에는 두 부서간 충돌이 자주 일어났다"고 전했다. 하지만 갈등으로 일을 그르칠 수는 없는 일.두 부서 연구원들은 '세계 최소형 위성DMB 튜너 개발'이란 목표를 위해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로젝트는 이내 자리를 잡게 됐고,목표는 3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달성됐다. '가로 8.0mm,세로 7.2mm,높이 1.4mm'에 불과해 휴대폰에도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초소형 제품이 개발된 것이다. 휴대폰으로 시간이나 요금에 구애 받지 않고 고화질 TV와 CD 수준 음질의 음악을 즐기기 위해선 이 제품을 내장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외 주요 휴대폰 메이커들이 삼성전기에 '러브콜'을 보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삼성전기는 이미 위성 DMB서비스가 시작된 일부지역에 공급하기 시작해 연간 1백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 위성DMB서비스가 시작되면 매출이 껑충 뛸 전망이다. 삼성전기는 이 때 얻은 기술을 바탕으로 내년 초 지상파 DMB용 튜너도 선보일 예정이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