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메모리황제 삼성전자-피와땀으로 점철된 승부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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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해도 반도체사업 30주년을 맞은 삼성전자. 2010년 누적매출 200조원을 바라보는 오늘의 삼성전자를 이루기까지는 피를 말리는 승부의 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한익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세계 정상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의 시작은 초라했습니다.
삼성의 반도체사업은 지난 1974년 12월 파산위기에 처한 한국반도체를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시 동양방송이사였던 이건희회장이 사재를 출연하면서 시작됐습니다.
1974년은 오일쇼크 영향으로 전세계적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시기로 당시 세계최대의 반도체기업이었던 패어차일드가 인원을 감축했을 정도로 반도체 사업전망이 극히 어두웠던 시기였습니다.
삼성전자가 당시 세계 메모리업계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계업체들을 압도하는 계기는 87년도에 찾아왔습니다.
미국이 일본업체들을 견제하기위해 D램에 보복관세를 매겼던 87년도는 전세계 메모리업체들이 불황을 맞아 설비투자를 일제히 축소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삼성전자의 이건희회장은 오히려 신규라인을 신설,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88년중반에 찾아온 누적적자를 모두 해소, 사상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90년 91년 경기침체기에도 투자를 지속해 일본업체들을 완전히 제치고 D램분야 황제자리에 올랐습니다.
88년도에 4D램개발시 밑으로파는 트랜치방식과 쌓아올리는 스택방식을 놓고 당시 세계 1위업체였던 도시바가 트랜치방식을 선택할때 이건희회장의 지시로 스택방식을 먼저 결정한 것은 삼성전자가 세계 1위에 오르는 토대가 됐습니다.
이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극적이며 감추어진 일화도 많습니다. 83년 기흥사업장 건설시 설계와 공사를 병행해 1년반이 걸리던 공기를 6개월만에 완공한 일, 64KD램을 개발할때 당시 연구개발을 지휘하던 현 이윤우 부회장의 지휘아래 64킬로미터를 행군했던 일화는 지금도 직원들사이에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
또 1메가와 4메가 D램을 개발할때 한국과 미국 연구소를 별도로 연구개발을 진행시켜 경쟁을 시킨 것은 능력중시의 삼성 기업이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와우TV뉴스 한익잽니다.
한익재기자 ijhan@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