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경영자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도,경영자의 배를 불리는 도구도 아닙니다.종업원과 그 가족의 장래를 챙겨주고 나아가 인류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처럼 크고 고매한 '대의명분'을 기업하는 목적으로 삼을 때 그 회사는 건전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일본 재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일본 교세라 명예회장(72)이 한국의 재계 리더들에게 윤리경영의 필요성과 효용에 대해 한수 가르침을 줬다. 미국 엔론사태와 같은 분식회계나 내부자거래,제품결함 은닉사건 등처럼 잇달아 터지고 있는 기업 비리를 미연에 방지하고 기업을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선 최고경영자부터 일반직원까지 모두 윤리의식으로 무장해야 된다는 게 이나모리 명예회장의 주장이다. 실적보다는 인격 이나모리 회장은 특히 "현재 기업들이 리더를 선임할 때 능력이나 실적만을 따지지만 반드시 '인격'이 우선돼야한다"며 "인격없이 기지만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기지를 과신하거나 잘못 사용할 경우 기업을 파탄에 이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강연 내용을 간추린다. 현대 경제사회를 근저부터 갉아먹고 있는 것은 리더의 자질에서 비롯된 기업윤리의 붕괴에 있다고 본다. 분식회계를 저지른 미국의 엔론과 월드컴 사례에서 보듯이 기업 윤리의 붕괴는 세계적인 기업을 파산으로 몰고가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 기업에서도 최근들어 이런 불상사가 다수 발생하며 산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고 있다. 나는 기업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하는 목적을 차원 높고 숭고한데 두는 것'이며,이런 '대의명분'은 누구라도 마음으로부터 동의할 수 있는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걸 깨달은 건 교세라를 창업한 지 얼마안되서였다. 교토의 절연체 제조회사의 엔지니어였던 나는 상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3년만에 회사를 떠나 스물일곱 나이에 교세라를 세웠다. 쉽지 않은 출발이었다. 신규 거래처는 좀처럼 뚫리지 않았고,그나마 들어오는 주문은 선발업체도 포기할 정도로 어려운 것 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누구도 할 수 없는' 신제품 개발에 도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까지 교세라의 기업목적은 '이나모리 가즈오의 기술을 세상에 알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창업 3년째가 되던 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1년전 뽑은 신입사원 11명이 "내년 승급과 보너스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두겠다"며 단체교섭을 신청해온 것.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일 벌어질 일도 모르는데 어떻게 장래를 보장해주겠는가. 3일 밤낮에 걸쳐 설득했다. "보장은 못한다. 대신 당신들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나 자신 목숨을 걸고 일하겠다. 내가 배신한다면 죽여도 좋다.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 그들은 요구를 철회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교세라의 기업목적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기업경영의 참된 목적이 기술자의 꿈을 이루는 것이나,경영자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란걸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이 때 바뀐 '전 종업원의 물심양면에 걸친 행복을 추구하는 동시에 인류사회의 진보발전에 공헌한다'는 기업목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타(利他) 경영 중시 이것은 '이기의 경영'에서 '이타의 경영'으로의 전환이었다. 경영권을 세습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 때였다. 사심을 떠난 고매한 목적이 제시되자 당당하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고 직원들도 더 열심히 일했다. 대의명분은 고액의 보수 등 인센티브를 물리치고,직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도록 독려하는 최고의 동기부여란 걸 알게 됐다. 이런 생각은 1984년 DDI를 창업하면서 한층 견고해졌다. 당시 일본에선 NTT 민영화를 계기로 민간사업자의 통신시장 진입이 허용되던 때.오래전부터 일본 통신요금이 너무 비싸 국민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 터였지만 매출 4조원에 33만명의 종업원을 둔 NTT에 맞서기엔 교세라(매출 2천3백억엔,종업원 1만2천명)는 너무 초라했다. 마치 창 하나로 거대한 풍차에 맞서는 돈키호테와 같았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물었다. "통신업에 진출하려는 동기가 올바른가.자신을 세상에 잘 보이고 싶은 사심이 있는가." 반년 뒤 "그렇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된 나는 통신업 진출을 선언했다. 이렇게 출발한 DDI는 3개사가 참여한 제2 민영통신업체중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다. DDI의 성공은 전 종업원이 자신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믿는다. 지난 93년 DDI를 증시에 상장할 때 창업자임에도 한 주도 갖지 않은 것은 이런 생각에서였다. '대의명분이란 게 허울뿐이지,정말로 경영에 도움이 되겠느냐'며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겉치레'야말로 성공의 원동력이란걸 경험을 통해 확신하게 됐다. 대의명분을 갖는다는 것은 기업 윤리의 붕괴를 막는다는 중요한 의미도 갖는다. 최근들어 분식회계,내부자거래와 같은 기업 불상사가 빈번히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영진에 대한 막대한 급여나 스톡옵션과 같은 경영시스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막대한 스톡옵션은 제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라 해도 경영자를 어느새 마약처럼 갉아먹어 (사회나 기업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업을 운영하도록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같은 풍조가 있는데,기업을 건전하게 성장시키기 위해선 경영자의 윤리관을 저해할 수 있는 보수 시스템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스톡옵션은 마약 현재 선진국 경제사회가 직면한 기업통치의 위기를 막기 위해선 특히 리더의 자질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기업들이 리더를 선임할 때는 인격보다는 능력이나 실적만을 따진다. 하지만 '재사(才士),재(才)에 빠진다'란 일본 격언이 있듯이 기지가 뛰어난 사람이 자신의 기지를 과신하거나 잘못 사용할 경우 기업을 파탄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초기 자본주의사회를 짊어진 프로테스탄트들이 '세상을 위해,사람을 위해'라고 외쳤던 것처럼 기업 리더는 공명정대한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격이란 '인간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반복 학습해야 터득할 수 있다. 스포츠맨이 매일 근육을 단련하지 않으면 훌륭한 몸매를 유지할 수 없듯이 경영자도 마음가짐을 태만히 하면 눈깜짝할 사이에 타락하고 만다. '욕심내지 마라','속이지 마라'와 같은 기본적인 가르침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세계 경영계에선 분식회계 등을 바로잡기 위해 고도의 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거나 엄격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지만,나는 리더들이 이러한 기본적인 가르침을 지키도록 독려하는 게 더 유효하다고 본다. 인격없이 기지만 갖춘 리더가 큰 권력을 휘두른다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유명무실해지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요체는 대의명분을 확립하고,경영자가 바르고 고매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데 있다. 인간으로서,기업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늘 자문자답하면서 연마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기업내에 확고한 윤리관을 구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정리=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