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제일은행 인수] 토종은행들, 세계 1.2위와 싸워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HSBC가 제일은행을 인수하고 나면 국내 은행권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다국적 금융회사들과 토종은행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국내 은행을 소유한 외국자본이 모두 투자펀드였던 반면 HSBC와 씨티은행은 전세계 영업네트워크와 금융노하우로 무장한 글로벌 플레이어들이란 점에서 국내은행들은 극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시장 점유율을 둘러싼 영업전략에서부터 시장구조를 일거에 바꾸는 인수합병까지 다양한 시도가 있을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매각과정과 조건
HSBC와 뉴브릿지캐피탈은 지난해 말께부터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1년간 진행됐다"는 관계자들의 전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데이비드 엘든 HSBC 회장도 지난해 11월 국내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은 HSBC의 사업에 적합한 은행"이라며 "어떤 은행이든 인수가격이 적절하다면 정밀실사 등을 통해 인수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든 협상은 홍콩에서 이뤄졌고 국내에 있는 투자은행(IB)들은 일절 개입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느 인수합병과 달리 막판까지도 정확한 조건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매각협상이 급진전된 것은 한국씨티은행 출범 이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인지 이 때를 전후해 매각 관련자들이 홍콩을 자주 드나드는 모습이 목격됐다.
예금보험공사 등에는 HSBC와 주간사로 보이는 기관으로부터 문의전화가 걸려왔다.
"제일은행에 지금 공개된 것 이외의 추가부실이 있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게 질문의 요지.노동계에서도 "제일은행이 조만간 HSBC로 넘어갈 것"이라고 제일은행측 관계자가 직접 언급했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남은 쟁점은 매각가격.뉴브릿지측은 주당 1만9천원대를 제시했으나 현재 논의상황으론 1만5천~1만7천원 안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은행판도 '빅4'에서 '빅6'로
그동안 외국계 은행은 국내은행과는 경쟁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비주류'였다.
영업점이라고 해봐야 10개 안팎이 고작이었고 서울과 부산 등 주요도시 외에는 영업망조차 없었다.
총자산 규모도 10조원 안팎이었다.
그러나 한국씨티은행 출범 이후 사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씨티은행은 한미은행 인수로 총자산을 14조원에서 66조원으로 단숨에 늘렸고 전국 각지에 2백23개 점포를 추가로 확보했다.
HSBC도 제일은행 인수성공시 총자산을 9조2천억원에서 56조원으로 키우고 전국 요지에 있는 제일은행 지점 4백4개를 영업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씨티은행과 HSBC의 출현으로 국민·우리·하나·신한 등 지금의 빅4체제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외국계 은행들의 최대 강점은 풍부한 선진금융기법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다.
국내은행들이 최근에야 도입한 지수연동예금,브릭스펀드 등 인기상품들은 씨티은행 HSBC 등이 만들어 이미 외국에서 검증을 거친 것이었다.
은행,보험,증권 등 전 금융영역을 포괄하고 있는 금융그룹의 파워와 1백년이 넘는 역사에서 쌓은 노하우를 국내 은행들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글로벌 네트워크 면에서도 국내은행들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씨티은행은 전 세계에 4천여개,HSBC그룹은 1만여개 점포를 갖고 있다.
반면 국내 은행들은 많아야 수십개 수준이다.
무역금융과 외화송금,환전 등에서 외국계 은행들은 절대적인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셈이다.
씨티은행 하나만으로도 초긴장 상태에 빠졌던 국내은행들은 씨티은행에 못지않은 또 다른 강적을 함께 상대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