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제재로 해결할 수 있다. 북한과 양자회담을 시작하는 순간 6자회담은 와해될 것이며 이는 바로 김정일이 원하는 것이다." 재선이 확실시되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9월 30일 첫 미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밝힌 이런 입장은 북핵문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기존 스탠스를 축약해담아낸 것이다. 이는 동시에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지난 8월 30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정강정책에는 보다 구체적인 입장이 들어 있다. 여기에는 `CVID'처럼 북한이 싫어하는 문구도 등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스런 정권들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스런 무기들을 보유하는것을 허용치 않을 것이다. 미국은 국제사회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CVID)를 요구하는 데 한 목소리를 내도록 이끌고 있다. " 반면 북한 외무성은 10월 8일 담화에서 6자회담과 핵문제 해결전망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전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못박은 데 이어 22일에는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고 ▲`동결 대 보상'에 참가할 준비가 돼 있으며 ▲남한 핵문제를 먼저 논의할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을 회담 재개조건으로 내걸었다. 또 동시행동에 따른 일괄타결 방식을 고수하는 가운데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부시 정부의 입장에 대해 "직접 미국이 보상에 참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게다가 부시 정부가 문제삼는 HEU(고농축우라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 외에도 에너지 지원과 테러지원국 및 경제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적 과실과 미국ㆍ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한 외교적 실리 추구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런 입장차는 향후 일방의 양보 없이는 양국이 평행선을 달릴 것임을 가늠케해 준다. 이 때문에 `흐림'이라는 북ㆍ미 관계 전망에 이견을 다는 목소리는 드물다. 부시 진영이 반테러와 대량살상무기(WMD) 비확산을 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되면서 차기 정부에는 강경파의 입김이 드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의 WMD 확산방지구상(PSI)과 각종 제재조치의 바탕 위에 한국과 중국까지 외교적으로 얽혀 들 수 있는 북한인권법까지 가세하면서 미국의 대북 압박수단이 다양해지고 강도도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향후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지 않을 경우 미국은 내년 상반기중 유엔 안보리에북핵문제를 끌고 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당연히 6자회담의 조기 개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윤황 선문대 교수는 "북핵에 인권법문제까지 겹치면서 북한이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면서 "부시 정부가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희박해 북한이 바로 회담장에 나올 명분이 약한 만큼 북한의 극적인 입장변화가 없는 한 연내 개최가 어려울 것으로우려된다"고 전망했다. 또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여러가지 상황에서 볼 때 미국이 군사적인 옵션을 택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며 "다만 북한의 체제붕괴를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 비군사적 옵션을 취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불거진지 만 2년이 넘고 있는 데다 부시 진영이 선거전 기간에 케리 후보측으로 부터 북핵을 방치해 문제를 키웠다는 공세에 직면한 점 등에 비춰 신속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 핵시설 공격을 적극 검토했던 초기 클린턴 행정부가 결국 대화를 통한 핵문제 접근 방식을 선택했듯이 제2기 부시 정부도 `평화 해결'의 원칙아래 유연한 대북외교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6자 틀을 유지하면서 물밑 양자접촉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한 `정면 돌파' 가능성도 미국의 선택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6자 체제를 전면 부정하지 않은 채 "미국이 회담재개 조건을 충분히 고려할 준비가 돼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유연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만큼 협상 가능성은 열려 있는 셈이나 꼬인 북미관계가 더욱 험난해질지, 아니면 대화와 타협의 길을 걷게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확실해질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기자 prince@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