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와 빅토르 유시첸코 두 후보간 접전으로 다음달 21일 있을 2차 선거까지 가봐야 차기 대통령이 결정될 전망이다. 이로 인해 31일 1차 선거가 끝난뒤 남은 3주일동안 어느 후보가 정치권의 유력인사들과 접촉해 상대방의 표를 잠식하느냐에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양 후보는 크게 친러와 친서방 경향의 차이를 갖고 있을 뿐 이라크에서 자국 병력 철수, 연금 인상 등 정책 전반에 대해서는 유사한 공약을 내걸고 있다. 유시첸코 후보는 쿠츠마 대통령이 이라크에 레이더를 판매한 죗값으로 이라크에자국군을 파견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야누코비치 총리 역시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이라크 주둔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대외정책은 상이한데 친러주의자인 야누코비치가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 신중한 접근을 주장하는 반면 유시첸코는 조속한 가입 의사를 밝히고 있다. 유시첸코는 특히 러시아를 무조건 배척하기 보다는 전략적 파트너로서에너지 공급 등 실질적인 관계에 역점을 둘 것임을 강조해왔다.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후보들의 친러-친서구 노선의 차이가 선거 판도를 좌우한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1991년 대선에서는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전 대통령이 소련으로부터 완전한독립과 친서구 정책을 표방하며 당선됐다. 하지만 1994년 7월 치러진 2번째 대선에서는 소원해진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쿠츠마 대통령이 당선됐다. 당시 그는 친서방 정책을 표방하는 크라프추크 전임 대통령에 맞서 러시아인들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공업지대에서 표를 휩쓸었다. 하지만 1999년 대선에서 쿠츠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유럽에 있다"며 친서방주의자로 변신해 재선됐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EU, 나토 등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던 만큼 쿠츠마의 친서구 공약은 성공을 거뒀다. 이번 선거도 과거 경험의 복제판이다. 야누코비치 총리는 러시아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동부와 남부지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 유시첸코 후보는 서부지역을 표밭으로 삼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6일 대선을 닷새 앞두고 키예프를 찾은 것도 야누코비치의 지지자들을 결속하기 위한 것이다. 러시아의 정치평론가인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유시첸코가 당선된다면 러시아는우크라이나와 군사 및 기술협력을 중단해야 할 것"이라며 "군사 기밀이 미국 등 서구 진영으로 넘어갈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우크라이나 경제에 대한 폭넓은 대외 개방 의사를밝혀온 유시첸코가 러시아 기업들에 보다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우크라이나 대선 결과를 보면 친서방(91년)→친러(94년)→친서방(99년) 후보들이 주기적으로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번 대선에서는친러 노선의 후보가 당선될 차례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병호 특파원 jerom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