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ㆍ아랍권은 9.11 테러 발생 3년이 지났지만 미국의 팽창주의에 대한 경계심과 함께 깊은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내 주요 신문들은 9.11 3주년 관련 사설과 기고문을 통해 당시 사건이 이라크전쟁 등 아랍권에 초래한 지각변동을 재점검하고 교훈을 되새겼다. 그러나 상당수 학자들과 지식인들은 9.11 테러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의 소행이 아니라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이른바 `음모이론'을 아직 고수하고있다. 또 이란 등 강경 반미국가들은 미국이 9.11 사건을 전세계적인 팽창주의 정책의구실로 삼고있으며 이로인한 최대 패배자는 아랍권이라고 지적했다. 이집트의 진보계 일간지 나흐다트 미스르는 "9.11 테러공격으로 인한 진짜 패배자는 미국인들이 아니라 아랍인들"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사설에서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 사건은 미국의 발등도 건드리지 않은 무고한 3억 아랍인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칼로 변해버렸다"고 개탄했다. 독립계 신문 알-미스리 알-욤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에 이어 미국의 대외 원조2번째 수혜국인 이집트와 미국 관계에 큰 변화가 벌어져 이집트의 역내 역할과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고 분석했다. 관영 아크바르 알-욤은 9.11 특집기사로 2개 지면을 채우고 "9.11 이후 세계는혼란과 전쟁, 테러리즘으로 얼룩져 있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또 "미국 안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폭력과 마약- 부시가 아프간에 준 선물" "테러리즘은 부시의 대선 트럼프 카드" 등 노골적 제목의 3개 관련 기사를 실었다. 대표적 야당신문인 알-와프드는 빈 라덴과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겨냥,"그들의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이교도의 수뇌인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 두 이슬람 국가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란 국영 TV는 "미국이 9.11 이후 전세계 테러리즘을 뿌리뽑는다는 구실로 아프간과 이라크를 공격하고, 다른 국가들을 테러지원국이라며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신문 알-칼리지는 9.11 테러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전세계가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우카즈지(紙)는 9.11 사건이후 목격하고 있는 특단의 조치들은 테러를 근절시키기는 커녕 전세계를 파괴와 혼란 속으로 빠뜨릴 것이라고 경계했다. 대조적으로 사우디 영자지 아랍뉴스는 사우디인 15명을 포함한 9.11 테러 공격범들을 "비뚤어진 광신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이들의 공격이후 세계가 더욱 불안해졌다고 보도했다. 한편 9.11 사건이 전세계 및 중동 패권전략의 일환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꾸민음모라는 주장은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9.11 테러 직후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사우디의 프린스 나이프 내무장관 등 여러 아랍 지도자들이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 주장은 미국의 역내 우방인이집트와 사우디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이집트 아인샴스 대학 인문대학장을 지낸 무스타파 샤카아는 지난 6월에도 언론회견에서 "우리는 아직까지도 누가 2001년 9월 11일 미국을 공격했는지 모르고 있다"며 "빈 라덴이 지시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왜 그에게 책임을 씌우려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당시 공격은 빈 라덴의 능력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며 "작전은100% 미국이 만든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학명문 카이로 아메리칸대학의 갈랄 아민 교수도 알-아흐람 기고문에서 "아랍은 물론 미국과 유럽의 상당수 저술가들은 당시 공격이 미국인들에 의해 저질러졌거나 미국의 지원으로 자행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은 범인들이 누군지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이집트 관영 신문 알-곰후리야는 지난 4월 유대인들이 9.11 테러를 포함해 전세계의 모든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집트의 유명한 민중 반전(反戰)가수 샤반 압둘 라힘은 올해 초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무너뜨린 것은 미국"이라는 내용의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그의 노래 가사는 미국이 아랍인과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몰아붙여 아랍세계에서 그들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쌍둥이 빌딩을 무너뜨렸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9.11 테러 3주년을 맞았지만 이처럼 아랍 언론과 정치인, 일반 대중은 사건의전말과 테러 주체 및 배경을 놓고 의문과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