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엄청난 충격에 빠트린 '김선일씨 피살 사건'은 불과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사람들의 건망증 속에 파묻혀버렸다. 김선일씨가 피랍된 경위는 아직까지도 의혹 투성이로 남아있지만, 사람들은 더이상 김씨와 그를 살해한 이라크 저항세력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라는 제목으로 계간 역사학잡지 '당대비평' 특별호가 나왔다. '탈영자들의 기념비'에 이어 당대비평의 올해 두 번째 특별호다. 책은 '아부 그라이브, 미국식 유토피아의 감옥', '국가의 무책임성과 국제연대-이라크 일본인 인질 석방의 의미', '참혹한 시간-김선일이 한국사회에 던진 물음들','전쟁, 테러리즘, 거래되는 인간의 고통' 등 총 4부로 구성됐다. 월터 데이비스 오하이오주립대 영문학과 명예교수는 1부에서 미국사회의 심리적문제와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졌던 미군의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학대가 어떻게 이어져있는지를 파헤친다. 데이비스 교수는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영화 관객들과 아부 그라이브에서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했던 미국 병사들은 공통된 심리가 있는데,그것은 이들 모두 난폭한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 내면의 공허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시다 히데타카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 교수,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풀려난 프리랜스 기자 야스다 준페이 등은 2부에서 국제연대가 있는 글로벌워치 등 시민단체들이 네트워크를 가동시킨 덕분에 이라크 일본인 인질들이 석방된 점을 돌아보면서 국가의 무책임성을 질타하고, 테러에 맞서는 국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있다. 3부는 김선일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에 그친다면 '제2,3의 김선일'은 계속 생겨날 것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짚어내고 있다. 인천대 강사인 이승원씨는 "미디어가 테러로 발생하는 스펙터클에만 관심을 보일 뿐 테러가 어째서 발생했는지,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당대비평' 편집위원인 김두식씨는 테러리즘을 이슬람 배타주의로 확대시키는 오류에 대해 반박하고, 김선일의 죽음을 희화한 일부 목사들의 연설을 인용하면서 한국 기독교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4부는 테러란 무엇이고,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밝히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지성인 중 하나인 장 보드리야르는 "전세계적 순환 시스템 때문에 소멸의 위기를 맞았던 개체들이 테러리즘이라는 방식으로 복수를 하게된다"고 테러의 작동기제에 대해 설명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한국학 교수는 한국의 근대 역사를 더듬으면서 한국인들이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들의 테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책에는 이밖에 문학평론가 도정일, '아웃사이더' 편집주간을 역임한 진중권, 팔레스타인 출신 시인이자 소설가 자카리아 모하메드 등 총 필자 24명의 글이 담겨있다. 340쪽. 1만5천원.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anfou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