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5일 MBC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것을 계기로 여야간 국보법 개폐를 둘러싼 대치가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당내에서 개정과 폐지 의견이 맞섰던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부에선 당장국보법 폐지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반면,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정체성문제와 연계시키며 대공세에 나섰다. 이에 따라 정기국회에서 친일와 유신독재 등 과거사 진상규명에 이어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에 갈등과 논란이 심화될 가능성이 증폭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 국보법 폐지 문제를 `역사적 결단'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있자 "폐지론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폐지쪽으로당론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국보법 폐지 논의는 우리나라도 냉전시대에서 데탕트 시대로 넘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상임중앙위원회나 확대간부회의를 열어도 좋고, 중앙위원회나 의원총회를 열어도 된다"며 조만간 폐지당론을 확정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이 의장은 이어 "야당도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여 활발한 논의가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며 당론이 정해지는 대로 야당과의 협상에 나설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당내 `국보법 폐지 입법추진 의원모임'은 6일 긴급간사회의를 열어 당내 개정론자들과의 토론회 날짜를 논의하는 등 폐지당론 확정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 그동안 개정을 주장해온 안영근(安泳根) 의원은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일단 국보법개정을 추진하되, 국보법 폐지나 대체입법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당내 일부 개정론자들은 최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을 거론하며 `폐지신중론'을 고수하고 있어 최종 당론결정까지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 "국보법 폐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동안 제기해온 노 대통령 정체성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대여공세를 벌였다.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대통령의 발언은 헌재와 대법원이 국보법 존속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에 대해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또 "한나라당 차원에서 노 대통령의 정체성에 대해 공식질문을 했을때 노 대통령은 `나의 모든 사상과 생각은 헌법에 담겨 있다'고 한마디로 답했다"면서 "그런데 대통령이 이렇게 법을 무시해도 되는 것이냐"고 따졌다. 이한구(李漢久) 정책위의장은 "체제유지를 위해서 국보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대법원이 확인했는데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이 이를 부정하면 어느나라 대통령이란 말이냐"면서 "이건 정말로 헌법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임태희(任太熙) 대변인은 "국보법은 인권을 위해 고칠 게 있으면 고치면 된다"며 당론인 국보법 개정을 강조한 뒤 "광화문 네거리에서 인공기를 들고 김정일을 찬양하는 군중집회를 허용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국회 논란 예고 =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서 여야간 첨예한 공방이 예상된다. 열린우리당 최재천(崔載千) 의원은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국보법폐지에 대해 신중하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대통령은 폐지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라면입법부도 빨리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공성진(孔星鎭) 제1정조위원장은 "지난 번 의총에서 한나라당은 폐지는 안되고 사회변화에 맞춰 개정할 부분은 개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여당의 입장이 정해지는 대로 최종 당론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수 고일환 기자 bingsoo@yna.co.kr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