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1980년 2차 오일쇼크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40달러를 넘어서면서 3차 오일쇼크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출렁거리던 국제유가는 지난주 들어 진정 국면에 들어섰지만 두바이유 브렌트유 미서부텍사스중질유(WTI) 등 주요 유종 모두 여전히 작년 평균가격(현물 기준)보다 10달러 이상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유가가 미쳤다"라고까지 표현한 푸르노모 유스기안토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장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현재의 고(高)유가 원인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동 불안이 장기화되면서 석유수급 차질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심리적 요인과 함께 전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와 달러약세로 인한 투기자본의 석유시장 유입이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 그나마 설득력을 얻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올 연말까지 배럴당 35달러(두바이유 기준) 안팎의 고유가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데에는 대부분 전문가들이 일치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고유가 상황의 장기화는 연간 소비하는 에너지 가운데 절반 가까이(47.6%·작년 기준)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연평균 1달러 오를 경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1%포인트 낮아지고 물가는 0.15%포인트 오르며 경상수지는 7억5천만달러 악화된다. 특히 유가급등이 가뜩이나 얼어붙은 소비와 투자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물가 상승만 부추기는 결과를 불러와 자칫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저성장)의 덫에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산업계에도 고유가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항공 해운 중화학 등 유가에 민감한 업종을 중심으로 이미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각 기업들은 전사적인 에너지절약 운동,제품가격 인상,공장가동 중단 등의 묘책을 짜내고 있지만 고유가로 인한 비용상승을 상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다 철강 비철금속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지난 7월 이후 다시 급등세로 돌아서면서 기업들은 이중고에 허덕이고 있다. 올초에 이은 제2의 원자재 대란이 현실화될 경우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는 물론 이미 한계상황에 내몰린 중소기업들의 도산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5월 이후 몇차례에 걸쳐 고유가 대책을 발표했지만 공공부문 에너지절약,해외자원개발 확대 등 과거 국제유가가 들썩일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던 각종 에너지 정책들의 '재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류세 인하 등 단기 대책은 최대한 지양하고 신·재생 에너지 개발 등 국가 에너지 체질 강화를 위한 중·장기 대책에 초점을 맞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정부 내부에서조차 에너지 분야 예산은 유가상황에 따라 해마다 들쭉날쭉하는 '고무줄 예산'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 얼마 만큼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고유가 파고를 넘기위해 에너지 저(低)소비형 사회로의 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에너지를 물쓰듯'사용하는 국민들의 선진국형 에너지 씀씀이가 먼저 바뀌지 않고서는 국제유가의 단기 급등에도 국가 전체가 휘청거리는 사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원걸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은 "세계 10위의 에너지소비 국가이자 세계 6위의 석유 소비국이라는 통계 실적은 한국이 경제규모(GDP 기준으로 세계 13위)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얼마나 방만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