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 소식이 여하(如何)신고?" "아직 밥값을 못했습니다" 하안거가 끝나던 지난달 30일 제주도 서귀포시 상효동의 한라산 남쪽 자락에 있는 남국선원(南國禪院). 선원장 혜국(慧國.55) 스님이 무문관(無門關)의 쪽문을 열고 안쪽의 수좌와 짧은 문답을 나눈 다음 다시 문을 닫았다. 무문관 안의 수좌는 이번 하안거 해제일에도 나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문을 잠근 채 일체 외부와 단절하고 면벽한 지 여러 해.몸도 마음도 지칠만 하지만 자기와의 한 판 승부를 끝내기 전에는 문을 열고 나오지 않을 작정이다. 무문관이란 '문 없는 문의 빗장' 또는 '문이 없는 관문'이라는 뜻. 중국 송나라 선승 무문 혜개(無門 慧開)가 48개의 공안(公案·화두)을 모은 책 '무문관'에서 비롯된 말로 문을 걸어 잠근 채 문 밖에 나가지 않고 수행하는 곳을 이른다. 국토의 최남단에 남국 선원이 문을 연 것은 지난 77년.제주도 출신인 혜국 스님이 "제주도에는 절이 하나도 없다며? 수좌들이 공부하는 선방이 없다는 것은 바로 절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야"라는 성철 스님의 말을 듣고 땅을 구해 토굴 형식의 선원을 열었다. 또 지난 94년에는 법당과 선원을 새로 지어 선원 2층에는 일반 선원,1층과 일반 선원 좌우편에는 7명이 수행할 수 있는 무문관을 마련했다. 대웅전 맞은편에는 시민 선방도 별도로 개설했다. 스님과 신자들이 한 도량에서 정진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혜국 스님은 "무문관 때문에 인심 다 잃게 생겼다"며 혀를 끌끌 찬다. 1명씩 들어갈 수 있는 방 7개로 구성된 무문관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많고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해제 때가 되면 입방(入房) 문의가 빗발친다는 것. 원래 무문관 수행기간은 1년이 기본이지만 3년째인 스님이 둘,4년째인 스님도 한 명 있다. 2층의 일반 선원에서 정진하거나 무문관 안의 스님들을 시봉하며 무문관 입방을 기다리는 스님들도 있다. 벌써 4∼5년 후까지 예약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하안거 해제에도 무문관에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스님들이 혜국 스님에게 "다음에는 넣어주기로 하시지 않았느냐"며 항의할 수밖에…. 무문관에선 하루 한끼만 먹는 일종식(一種食)과 묵언(默言)이 원칙이다. 따라서 점심 한끼만 쪽문을 통해 넣어준다. 들여보낸 밥그릇이 다음날 나오지 않으면 삼매에 들었거나 몸에 이상이 생겼거나 둘 중 하나다. 몸이 아프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쪽문 앞에 쪽지를 적어 내놓는다. 일반 서적은 물론 경전도 들여갈 수 없어 무문관에선 시간마저 정지된 느낌이라고 한다. 새소리 꽃향기로 가는 세월을 짐작할 뿐…. 2층의 일반 선원과 대웅전 맞은편의 시민 선방도 수좌와 불자들이 선호하는 수행처다. 이번 하안거에 일반 선원에는 28명,시민 선방에는 56명이 방부를 들여 정진했다. 해제날인데도 일반 선원에는 한 수좌가 바다 쪽을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속인의 눈에는 바다 쪽 경치 좋은 것만 보이는데 저 수좌는 무얼 보고 있을까. 혜국 스님은 "화두는 그냥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빠득빠득 애를 쓰고 용을 써야 성성(惺惺)해진다"며 "주린 사람 밥 찾듯이,목마른 이 물 찾듯이,외아들 잃은 어미가 자식 생각하듯이 간절하게 챙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간절함과 노력이 쌓여야 어느 순간에 화두가 탁 터진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혜국 스님의 삶은 치열한 수행 그 자체였다. 13세에 해인사에서 일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혜국 스님은 21세 때 반드시 성불(成佛)할 것을 다짐하며 오른손 손가락 3개를 태워 부처님께 공양했다. 이후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 7개월 동안 생식을 하며 장좌불와(長坐不臥)했고 성철 구산 경봉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며 대승사 봉암사 칠불사 도성암 등에서 정진했다. "이 몸뚱이가 그릇이라면 그 안에는 생각이라는 물이 들어 있어요. 그릇에 흙탕물이 가득할 땐 그 찌꺼기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 생각도 번뇌망상으로 가득 차 있을땐 참나를 볼 수 없습니다. 흙탕물을 가만 놔두면 가라앉아서 맑아지는 것처럼 화두는 망상번뇌를 가라앉혀 참나를 볼 수 있도록 해주지요." 혜국 스님은 "망상번뇌는 밖에서 들어온 게 아니라 내 속에 있으면서 주인 행세를 한다"며 "번뇌망상을 화두로 돌리는 법을 배우라"고 충고한다. 그래야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될 수 있으며 육신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는 설명이다. 참선이 썩은 세상을 바로잡는 데 기여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혜국 스님은 "세상은 전에도 지금도 썩은 바 없으며 썩은 것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일갈했다. 마음을 맑게 하는 데서 세상을 구하는 길이 열린다는 얘기다. 선원 앞에 선 야자수 한 그루가 깨달음을 향한 납자들의 서원처럼 늠름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