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인재들이 성장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좋은 업적을 쌓는 것을 볼 때 고맙고 반갑고 아름다워 보인다."
얼핏 잭 웰치 전GE회장의 명언처럼 보이지만 이 말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경영철학을 집약한 어록이다.
그는 기업흥망의 최대 승부처를 인재경영에 뒀고 사람을 한 번 쓰면 끝까지 믿고 맡겼다.
그러나 사업에서 이윤을 내고 규모를 확장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입사 1~2년이 지나면 신입사원의 5%는 탈락하고 30%는 우수한 인재가 된다.
문제는 나머지 65%다.
이들은 환경과 지도에 의해 좌우된다.
조직력이란 바로 이들을 인재로 만들어나가는 힘이다."
신간 '이병철 경영대전'(홍하상 지음,바다출판사)은 그의 생애와 경영철학을 입체적으로 비추는 5각 프리즘이다.
그 다양한 각도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자네가 일군 사업을 내가 관리만 했을 뿐"이라며 3억원이 든 궤짝을 내밀던 친구,인민군을 피해 다락방에 숨겨주고 피난비까지 마련해온 운전기사….
흔히 삼성 하면 치밀하고 분석적인 요소를 떠올리지만 그의 탁월한 사업감각은 이성과 감성의 조화에서 비롯됐다.
'실현 가능성의 많고 적음을 떠나 본인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그것을 찾는 것'이 바로 성공하는 사업이자 감성경영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수많은 연구와 사전 조사를 거쳐 위험요소를 최대한 제거하는 것''직원이든 관련 학자든 여러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것''일단 결정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것' 등의 지침이 의미를 갖는다.
이 지침들은 마산에서 정미소사업으로 돈을 모은 뒤 일제의 은행융자 강제반환으로 알거지가 됐을 때나 만주 벌판에 청과물을 납품하던 무역업의 개척,미래를 내다본 전자·반도체사업 진출 등 그의 일생을 관통한 지론이었다.
5·16 이후 부정 축재자 1호로 낙인찍힌 그가 박정희를 만나 대한민국에서 사업하는 것의 모순과 애로점을 눈 하나 꿈쩍 않고 조목조목 설명하는 대목과 최신식 공장을 짓기 위해 외국 바이어들을 설득하고 끌어들이는 과정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필름'이다.
이같은 그의 마인드를 저자는 '기업가의 일생은 인재를 모으는 것''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라는 두 구절로 요약한다.
저자의 말처럼 기업인 한 사람에 관해 4백여종의 책이 나올 정도인 일본에 비하자면 국내의 기업가 연구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5년 전부터 삼성그룹의 경영기법을 연구해온 그는 이병철이 일본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고 여러가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틈만 나면 현해탄을 건넜다.
이병철과 교류가 잦았던 일본 기업인들은 물론 아카사키에 있는 단골 '모리타 이발소',도쿄의 복어요리집 '후구겐' 등을 찾아다니며 40여년 전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이 책은 이병철의 탄생부터 초기 사업,계열사를 하나씩 설립하는 과정,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들까지 아우르고 있다.
단순한 연대기에 그치지 않고 그의 경영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큰 기둥들을 조명하면서 남다르게 사람을 관리하는 삼성의 독특한 비즈니스 기법이 확립된 과정을 상세히 다뤘다.
4백32쪽,1만2천8백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