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패스와 공수전환, 강인한 대인마크.'

'언더독' 그리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04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4)를 관전한 국내 축구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빠르다. 그러나 단순히 빠른 것만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기술 수준이 평준화돼 수비 조직력과 대인마크를 겸비한 팀이 득세했다"고 입을 모았다.

몇몇 전문가들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대인마크는 오히려 과거로 회귀한 경향"이라며 2006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세계축구의 흐름을 짚어볼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우승팀 그리스에 대해서는 수비 위주의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는 평가지만 이변의 원동력만큼은 한국이 본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본 유럽축구의 흐름과 한국축구에 시사하는 바를 들어본다.

◆신문선 SBS 해설위원= 80년대 유행했던 축구로 돌아간 느낌이다. 그리스와 체코가 대표 주자다. 체력과 대인마크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리스는 단 한번도 볼 점유율이 앞서지 못하고도 우승했다. 수비에서의 대인마크가 강력했기 때문이다.

공격 축구를 하는 팀이 탈락해 보는 재미는 떨어졌지만 경기 운영 면에서 보면 기술이 거의 평준화돼 결국 전략이 좋은 팀이 성공했다는 교훈을 얻었다.

유럽축구 판도를 보면 프랑스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독일은 세대교체가 아직 멀었으며 이탈리아도 선수들의 개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상이었다. 8강에서 떨어졌지만 잉글랜드가 속도와 폭발력에서 인상적이었다.

한국 축구에 주는 메시지는 체력 싸움에서 밀리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피드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대표팀이 아니라 프로리그의 흐름이 달라져야 한다.

◆이용수 KBS 해설위원= 우승팀 그리스에 초점을 맞춘다면 조직력과 체력, 골 결정력이 두드러졌다.

그리스는 4-4-2 포메이션의 변형인 5-4-1로 철저한 수비를 펼치면서도 공격할 때는 자연스럽게 3-4-3으로 변환해 몇 안되는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효율성을 과시했다.

재미가 없었을 지는 몰라도 우리 입장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 우리도 2002한일월드컵 때 3-4-3과 5-4-1 포메이션을 번갈아 구사했지만 당시 대표팀은 그리스와는 달리 4강전부터 체력의 한계를 느껴 우승까지 이루지는 못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데코(이상 포르투갈), 웨인 루니(잉글랜드) 등 젊은 선수들이 부각된 반면 지네딘 지단(프랑스)과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등 '가는 별'들이 다소 쇠퇴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번 대회의 특징이다.

◆허정무 대표팀 수석코치= 한마디로 이변의 연속이었다. 현지에서 직접 관전한 느낌을 종합해 전체 흐름을 평가한다면 압박은 더 강해졌고 빠른 패스와 공수전환이 필수 항목이 됐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압박은 이전 월드컵 때부터 현재 축구 흐름을 대변하는 단어였지만 앞으로 더 큰 줄기로 이어질 것 같다.

그리스의 우승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수비가 튼튼해야 빠른 공수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수비만 한다고 우승이라는 열매를 따낼 수는 없다.

수비에서 빠른 역습으로 이어지고 반대로 공격수들도 빠르게 수비에 가담하는 유기적인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대표팀에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팀이었다.

◆장순필 축구협회 기술위원= 키워드는 빠른 패스와 몸싸움, 그리고 판단력이다.

예전 같으면 파울을 불 것도 넘어가는 게 많았다. 볼이 오기 전에 판단력이 빨라야 한다.

압박보다는 볼이 빠르게 전개되는 축구가 흐름이다. 생각지도 않은 팀들이 이긴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배울 점이라면 느린 선수는 이제 힘들다는 것이다. 스피드도 빨라져야 하겠지만 그 못지 않게 판단도 빨라야 살아남는다. 아울러 어깨 싸움도 더 강해져야 한다.

◆오세권 축구협회 기술위원= 전체적으로 압박 수비가 강해졌지만 이에 대한 대응으로 빠른 패스를 통해 압박에서 벗어나는 연구도 그만큼 많이 진행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럽축구가 빨라진 만큼 우리 축구도 볼을 잡고 어떻게 해보려 하지 말고 압박에서 탈출하기 위해 빨리 패스로 전개해야 한다.

예전 방식의 사이드 돌파 후 크로스 공식은 원터치, 논스톱 크로스로 많이 바뀌었다.

공격에서 빼앗기면 곧장 압박에 들어간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해원 축구협회 기술위원= 빅 리그가 있는 팀들이 모조리 탈락했는데 리그가 끝나고 바로 유로2004가 시작됐다는 점이 아무래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지나칠 정도로 수비 위주의 축구가 힘을 얻었다. 그리스의 우승이 그랬는데 수비 조직력으로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조별리그에서 60골이 터졌지만 일부 다득점경기를 빼면 골이 적게 난 편이다. 그리스의 우승을 보고 감독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한번 더 실감했다.

(서울=연합뉴스) 옥철.강건택기자 oakchul@yna.co.kr firstcirc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