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부하의 범죄를 신고하지 않은 지휘관을 형사처벌 하는 내용의 `불고지죄' 조항을 군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사실이 드러나 야전 지휘관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장교는 20일 "부하가 사형이나 무기징역, 단기 3년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경우 처벌하는 조항을 군형법 93조에 신설하는 방안이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서 연구과제로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군 지휘관들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 정권이나 공산주의 체제에서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주로 사용했던 불고지죄를 군형법에 도입하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반민주적 발상이라며 거세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들은 "전쟁에 대비해 존재하는 군에서 전투력 강화와 장병 사기진작 차원에서 부하의 잘못을 발견하고도 관용을 베풀어야 할 때가 종종 있는 데 범죄신고를 의무화한다면 지휘관의 재량권은 극도로 위축돼 지휘권 확립이 사실상 어렵게 된다"고 주장했다. 대간첩작전이나 교전시 작전성공을 위해 매진해야 하는 지휘관들이 작전 도중 불고지죄를 의식해 부하들의 행동이 신고대상 범죄에 해당되지 않나 신경써야 하는데 그럴 경우 부대의 전투력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방 00연대를 지휘하고 있는 A대령은 "전문 수사관들도 피의자를 조사할 때 일일이 법전을 찾는 마당에 법률지식이 거의 없는 지휘관들이 부하들의 잘못을 발견할 때마다 신고대상인지 법률적으로 판단하다 보면 부대 통솔에 심각한 차질을 빚어 군 기강 문란은 물론, 전투력 저하가 불가피해진다"라고 우려했다. 법무 병과 내부에서도 국가보안법상 특정조항에만 적용되는 불고지죄가 인권침해 논란으로 폐기될 운명에 놓여있는 마당에 이를 군형법에 도입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봉착할 것이라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 구성 등의 특정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알면서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에 고지하지 아니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서 불고지죄가 갖는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도입 여부를 놓고 내부의견 수렴과정을 거친 것은 최근 추진 중인 군검찰조직 확대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군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법무관리관실은 국방부에만 설치된 군검찰단을 육.해.공군 등 각군 본부에도 만들고 헌병과 기무요원들에 대한 군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입법화작업을 추진, 참여정부 들어 끊임없이 제기돼온 군조직 슬림화 요구에 역행되고 군내 지휘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법무관리관실 관계자는 "범죄구성요건 자체가 불명확한 조항을 고치는 것을 포함한 군형법 전반에 걸쳐 개정작업을 추진하면서 불고지죄 신설 방안을 내부 연구과제로 검토한 것은 사실이나 아직 공식 입장으로 결정하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군부대에서 사인이 불분명한 의문사 사례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휘관들의 사건은폐 유혹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불고지죄 신설안이 나왔으며, 문제가 있다면 공청회 등 향후 법제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걸러질 것이기 때문에 우려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은 이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군형법상의 불고지죄 신설방안은 초기단계의 법리.법률적 의견일 뿐"이라며 "법무관실 내부는 물론 각군 법무관실, 고등군사법원 등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채택이 부적절한 것으로 잠정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