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다.


핀란드만의 노을을 기다리며 자정 가까이 설쳤는 데도 눈이 감기지 않는다.


평소라면 곯아 떨어졌을 시간이니 시차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유난히 선명한 핀란드만 핏빛 노을의 잔상이 너무 강렬해서?


잠들기는 틀렸고, 나이트 투어버스에 몸을 싣는다.


두터운 어둠을 부조해 색깔을 입힌 듯 오랜 연륜의 건축물들을 한층 도드라지게 만드는 오색 조명잔치와 새벽 1시30분께부터 화물선 통행을 위해 런던브리지처럼 들어 올려지는 네바강의 다리들을 순례하는 길이다.


그러나 어둠이라 할 시간은 세 시간 남짓.


득달같이 달려온 여명이 온 새벽을 깨어 있게 한 의문에 해답을 풀어놓는다.


백야(白夜), 하루 20시간 넘게 환한 그 기이한 자연현상과의 첫 대면으로 종일 까닭 모를 흥분상태에 있었음을….


이른 아침부터 아릴 정도로 눈부신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태양은 밤샘으로 처진 몸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길고 긴 하루를 재촉한다.


웅장한 사원의 황금돔, 러시아와 유럽의 각기 다른 특징이 밴 건축물, 거미줄처럼 얽힌 수로가 어우러진 도시는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오감을 일깨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철저한 계획도시.


1703년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 대제가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러시아는 혼란스러웠다.


차르 알렉시스가 남긴 세 명의 후계자와 그들을 배경으로 한 세력 간의 피비린내 나는 다툼이 이어졌다.


급기야는 황제를 참칭하는 사례도 횡행했다.


표트르 대제는 옥좌에 오르더라도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천도를 결심했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낙점했다.


입지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네바강 하구 삼각주 지역이라 수많은 섬으로 나뉜 데다 땅도 물렀다.


그 땅을 다져 건물을 세웠고, 수로를 손봐 섬과 섬을 4백여개의 다리로 이었다.


마치 '이곳에 도시가 있어라'는 표트르 대제의 한 마디에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북방의 베네치아', '유럽으로 향한 창'의 중심이 30여년 만에 뚝딱 완성됐다.


도시 건설의 첫 삽을 뜬 곳은 토끼섬의 페트로파블로스크요새(피터폴사원).


라도가호수에서 흘러온 네바강이 바실리에프스키섬에 부딪쳐 둘로 갈라지는 지점을 지켜보는 천혜의 요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높은 1백21m의 첨탑과 로마노프 왕가의 무덤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원이 중심을 잡고 있다.


18세기 중엽부터 형무소를 겸했다고 한다.


네바강을 향해 나 있는 '네바의 문'이 잘 알려져 있다.


사형수들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지났던 문인데, 사형 5분 전 특사로 풀려나 시베리아로 유형된 도스토예프스키의 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맑은 날 요새 외곽의 둔치는 일광욕을 하기 위해 벌거벗은 사람들로 가득 찬다.


바실리에프스키섬에서 궁전다리를 건너면 넵스키대로가 이어진다.


넵스키대로는 사람들로 붐비는 세종로를 연상시키는 이곳의 중심거리.


볼거리가 길을 따라 산재해 있다.


에르미타주박물관이 그 첫째다.


에르미타주박물관은 루브르박물관,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


3백50개의 방으로 구성된 이 박물관은 동선 길이만해도 10km에 달한다.


소장 작품은 1만2천점의 조각, 1만6천점의 회화, 60만점의 판화와 데생 등을 포함해 3백만점을 헤아린다.


한 작품에 10초씩 하루 8시간을 본다고 해도 4년가량 걸린다는 계산.


예카테리나 2세가 2백26점의 회화를 구입한 것을 계기로 규모가 커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2점), 루벤스, 렘브란트, 반다이크, 르누와르, 고흐, 고갱 등의 진품들은 미술 문외한들도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에르미타주박물관은 겨울궁전이기도 했다.


게오르기홀이 차르의 통치행위가 이루어졌던 겨울궁전의 중심.


쌍두 독수리 문장과 황금옥좌를 볼 수 있다.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차르인 니콜라이 2세가 1917년 3월혁명 때 마지막까지 숨었다가 잡힌 서재, 그 해 10월 케렌스키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가 레닌의 볼세비키에 의해 전복되기 직전 회의를 했던 방 등은 파란만장한 러시아 역사의 큰 줄기를 짚어준다.


당시 함포 한 방으로 볼세비키혁명을 지원했던 순양함 아브로라호(오로라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호텔 건너편에 영구 정박되어 있다.


박물관 앞 궁전광장은 1905년 러시아혁명의 불씨를 지폈던 '피의 일요일 사건'의 현장로 잘 알려져 있다.


박물관에서 조금 걸어 내려가면 '피의 사원'을 만난다.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바실리사원을 연상케 하는 사원이다.


푸르동 등의 급진사상을 받아들인 일부 러시아 인텔리겐차들이 농노 해방 등 위로부터의 개혁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데 반발해 시찰중이던 알렉산더 2세를 폭탄테러했던 장소에 세워졌다.


현란한 모자이크 장식의 사원 정중앙이 폭탄테러가 있었던 장소.


작은 유람선이 오가는 폭 좁은 수로의 다리 위에서 보는 사원 전망이 뛰어나다.


넵스키대로 건너편의 이삭성당은 그 규모로 보는 이들의 기를 죽인다.


성당을 떠받치고 있는 입구의 통대리석 기둥부터 어마어마하다.


1백kg의 순금을 입힌 황금돔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것이라고 한다.


성서의 내용과 성인을 묘사한 러시아 화가들의 회화와 조각품, 1만2천여개 조각으로 만든 62점의 프레스코화 등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돔을 둘러 설치한 전망대에 오르면 시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스피커에서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은 뜻밖에도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경박한 관광지가 아니라는 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관광식당 무대의 라이브공연 레파토리중 하나가 카치니의 아베마리아인 점도 그렇다.


성당 앞뒤로 청동기마상이 있는데 강쪽에 있는 것이 피터 대제의 동상.


거리 곳곳의 동상과 흉상들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리고 여름궁전.


시내에서 30km쯤 떨어진 핀란드만 해변가의 여름궁전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행에서 절대 지나치면 안될 명소.


러시아 황제와 귀족들의 여름휴양지로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


프랑스 베르사이유궁전을 본따 조성했다는데 청출어람이란 말이 딱 들어 맞는다.


60여개의 분수가 알맞게 놓인 대궁전 앞 삼손분수 지역이 중심 포인트.


앞으로 난 수로와 양옆으로 이어진 푸른 숲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곳곳에 설치된 장난스러운 모습의 분수는 아이는 물론 어른들의 마음도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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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7월13일부터 직항기 운항 >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제2의 도시.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으로 6백50km 지점, 발트해 동쪽 핀란드만 깊숙한 곳의 네바강 삼각주에 자리하고 있다.


인구는 5백만명.


제정 러시아 때 2백여년 동안 러시아의 수도였다.


러시아와 유럽의 색채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도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문화중심 도시'로서의 자긍심이 강하다.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 등 수많은 러시아 문호와 음악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묻혔다.


푸틴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기압은 조금 낮고, 일교차가 10도 이상으로 심한 편.


밤 12시쯤에 해가 떨어지고 새벽 3시30분께면 날이 밝는 백야 현상이 이어진다.


이달 말부터 '백야축제'가 열린다.


대한항공(1588-2001)은 7월13일부터 상트 페테르부르크 직항편을 띄운다.


매주 화ㆍ목ㆍ토 오후 2시30분 출발.


비행시간은 9시간10분 정도.


자유여행사(02-3455-0001) 롯데관광(02-399-2305) 하나투어(1577-1212) 나스항공(02-777-7708) 등이 대한항공 직항편을 이용한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삼대 피요르드, 베르겐 북유럽 4국 9일'은 3백40만~3백60만원, '러시아, 백러시아, 발틱 3국 10일'은 2백80만~3백만원, '러시아 일주 6일'은 1백90만~2백20만원.



상트 페테르부르크=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