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상징적인 모습이었는데 오늘 철거로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와 협력의 기반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16일 오전 10시 20분 경기도 파주시 야동군 육군 00부대 경계초소. 남북장성급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이날 첫 실시된 확성기 해체작업을 지휘한 박종선 심리전단 중대장(대위.34)은 42년간 존재해온 대북 선전기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이날 해체작업은 녹색 T셔츠 차림을 한 이 부대 소속 심리전단 요원 15명이 가로 4m, 세로 4m 크기의 확성기에 다가가 케이블 커넥터를 분리하고 땅속에 묻혀있던 스피커 지지선을 제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진행됐다. 이어 스패너를 든 작업요원들의 너트를 푸는 빠른 손놀림에 의해 스피커 확장판과 스피커 혼, 철제 받침틀 등이 차례로 분리됐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래 살벌하게 유지돼온 남북대결의 현장을 상징적으로보여준 대북 확성기가 철거되는데도 이 과정을 지켜본 심리전단 작업요원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수십년간 북한 장병을 상대로 남한 체제의 우월성 등을 선전해 `따뜻한 남쪽 나라'에 대한 동경심을 갖도록 역할해온 선전도구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모습을 제대로 실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이날 이후 대북선전기구만 없어질 뿐 북녘을 향해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군사적 적대관계는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도 장병들의 마음을착잡하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철거된 확성기는 1999년 10월 2억원의 예산을 들여 교체된 최신형으로 500W(와트)급 스피커 48개로 이뤄져 있었고 전파거리는 10∼12㎞에 달했다. 1962년부터 이 곳에서 시작된 대북방송은 1974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중단됐다 1980년 북측에서 먼저 재개한 데 대해 남측에서 대응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계속됐다. 선전방송은 6년간 중단됐다 양쪽 모두에서 재개됐으나 방송효과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남북간 방송기술 격차가 벌어져 우리의 방송음이 북측의 대남방송 소리를 압도했고 내용도 시사뉴스와 신세대 트로트, 대중음악, 날씨정보가 주류를 이룬데 반해북측은 한.미간 이간질과 남한사회 분열, 체제우월성 선전 등에 주력했다. 남측에서 목장갑을 착용한 심리전단 요원들이 확성기를 해체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동안 강폭 3.5㎞ 너머에 있는 북녘땅에서도 상응한 조치가 취해졌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우리측 초소에서 육안으로도 강 건너 지역인 황해북도 개풍군 림한리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이날은 짙은 안개 때문에 북한군의 움직임을 관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은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가 적힌 입간판이 노후화되어 `김',`일', `세' 글씨가 수개월 전에 떨어져 나갔는데도 지금까지 보수작업을 하지 않아휴전선 일대의 선전물 제거 합의를 예측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게 했다. (파주=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