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그네 삶이잖아요" 인종, 종교, 정치적 견해 등의 차이로 인해 조국을 등진 채 만리타국에서 유랑하는 `나그네'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펴온 독지가가 있어 화제다. 서울 중구 예관동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임병해(48)씨는 조국의 박해를 피해우리나라로 망명 후 난민지위를 신청한 외국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취업을 돕고있다. 임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 사무실이 자리한 빌딩 옥상에 방 2개, 거실, 욕실 등이 들어선 `쉼터'를 마련한 것은 지난 99년. 청년시절 기독교 신문에서 기자생활을 할때 불법체류자들을 돕는 성직자들을 취재한 경험은 개인사업을 하면서 `나눔의 삶'을 실천할 길을 찾던 그가 난민들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다. 오갈데 없는 외국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라 생각했다는 그는 외국인들의 정착과 자립을 돕는 `쉼터'를 만든 뒤 줄곧 매달 수입 중 150만~200만원을 그들을 위해 써왔다. 많을 땐 7~8명이 모여사는 쉼터에는 3년여 전부터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연결해 준 10여명의 난민신청자들과 수십명의 일반 불법체류자들이 짧게는 한달,길게는 8~9개월간 머물다 취직과 함께 독립해 나갔다. 이들의 국적은 콩고, 라이베리아,에티오피아, 예멘, 이집트, 방글레시아, 스리랑카 등 다양했고 본국에서의 직업도 의사, 제트기조종사, 마라토너, 야당지도자,정보기관원 등으로 각양각색. 저마다 고향을 떠나온 사연도 절절하단다. 임씨를 우리 말로 `형님' `아버지'등으로 부르는 이들은 성탄절 새벽 일터에서직접 만든 케이크를 가져와 임씨를 감동시킨 때도 있었고, 목감기가 낫지 않아 병원에 데려갔더니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감염 진단을 받아와 슬프게 `쉼터'를 떠난이도 있었다. 임씨가 아쉬운 건 국내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시스템이 극히 미미하다는 것. 1992년 12월 `유엔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재작년 2월 첫난민을 배출한데 이어 현재까지 총 14명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등 근년들어 난민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 그러나 통상 관광비자 등으로 입국하는 난민 신청자들은 인정심사가 진행되는 1~2년 동안 의료보험과 생활비 지원 등 기본적인 사회보장 혜택도 받지 못해 도움의손길이 절실하지만 아직 정부는 구상만 할 뿐 특별한 대책마련을 못한 상태다. 임씨는 "인권 차원의 접근과 함께 민간외교의 측면도 고려했으면 좋겠다"며 "쉼터에 머물고 간 외국인 중 상당수가 자국에서는 최고 인텔리 계층인데, 이들이 장차그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국가이미지 제고 차원에서라도 이들을 지원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진촬영을 한사코 거부한 임씨는 "60년대 그들과 똑같은 입장에서 돈을 벌기위해 독일 등으로 진출, 타향살이 설움을 이기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나서서 도움을 준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하는 생각을 한다"며 소망을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