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모두가 지갑을 닫아버렸다. 그나마 내수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부유층들마저 소비를 줄이면서 수입차 명품 등 고가품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가 급락과 부동산 경기 위축이 내수시장 침체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서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져 삶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생명보험까지 해약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급급하기 때문이다.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유가 부담을 견디지 못해 자가용 운행을 줄이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샐러리맨들도 급증하고 있다. ------------------------------------------------------------------------- 회사원 김종길씨(36)는 매달 3만8천원 가량의 보험료를 납부하며 7년째 부어오던 암보험을 한달 전 깼다. 해약 후 그가 손에 쥔 돈은 불과 2백60여만원. 3년 정도만 보험료를 더 내면 납입기간이 끝나지만 당장 카드 빚을 막는게 급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경우처럼 보험계약을 깨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또 2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해 효력이 없어지는 계약도 속출하고 있다. 모두 경기침체 장기화의 어두운 그림자들이다. 18일 생명보험협회 집계에 따르면 2003회계연도가 시작된 작년 4월부터 올 2월까지 11개월 동안의 효력 상실ㆍ해약 건수는 총 8백18만9천건으로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02년 전체의 5백98만8천건보다 크게 많은 규모다. 생명보험의 효력상실ㆍ해약건수는 1996년만 해도 4백99만건에 그쳤으나 외환위기가 닥친 97년 7백19만건으로 급증했고 98년에는 9백49만건으로 불어났다. 99년에는 6백72만건으로 줄었고 이후 3년 연속 5백만건대로 떨어졌으나 작년에 급증한 것이다. 대형 생보사의 한 관계자는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당장의 생활비 마련을 위해 생계형 해약이 많았던 것으로 분석된다"며 "하지만 보험은 해약하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가급적 깨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