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개봉하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제작 미라신코리아)는 홍상수 감독이 지금까지 연출한 다섯 편 가운데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유지태ㆍ김태우ㆍ성현아 등 스타급 배우들의 출연, 충무로에서 장인으로 꼽히는 김형구 촬영감독과 이강산 조명감독의 가세, 프랑스 굴지의 배급사 MK2의 투자,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2년 전, `예스터데이'의 흥행 참패로 퇴출 위기에 내몰렸던 미라신코리아(대표안병주)가 이 영화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충무로에서 관심거리다. 이야기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헌준(김태우)이 후배인 문호(유지태)를 만나러 서울 평창동 고급 주택가를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문호는 일부러 집에까지 오라고 해놓고는 아내 핑계를 대며 나가자고 말한다. 그도 문전박대를 하기에는 미안했는지 마당에 들어와 아무도 밟지 않은 첫눈을 밟아보라고 권한다. 음식점에서 중국요리와 고량주를 탁자 위에 놓고 마주앉은 두 사람. 헌준의 유학시절 얘기와 귀국 후 계획, 문호의 아내 얘기 등을 화제로 삼다가 자연스럽게 7년전 차례로 사랑했던 선화를 떠올린다. 헌준은 문호한테서 선화가 부천에서 호텔 바를 경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만나러 가자고 보챈다. 혼자 가라고 말하는 문호를 이끌고 선화에게 간 헌준은 정작선화를 만난 뒤에는 영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먼저 가라고 권한다. 닭튀김을 안주 삼아 소주와 맥주를 마시면서 회상에 잠긴 두 사람. 술김을 핑계로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며 가시돋친 말을 주고받는다. 뒤늦게 선화가 나타나 그의 집으로 옮긴 세 사람의 사이는 더욱 묘해진다. 예전의 `관계'를 재현해보려는 두 남자는 선화와 단 둘이 있을 기회를 노리고 선화는 은근히 이를 즐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시작으로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을 거쳐오는 동안 홍상수의 스타일은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 일상의 단면을 포착하면서 지식인의 이중성과 허위의식을 까발기려는 태도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선화와 `관계'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두 남자는 중국음식점에서도 종업원을 상대로 각각 영화 배우와 그림 모델을 제의한다. 관객은 모든 인간이 결국 수컷과 암컷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한편으로는 통쾌해하고 한편으로는 본심을들킨 듯 쑥스러워한다. 홍상수 감독이 시나리오의 얼개만 짜놓은 뒤 즉석에서 배우에게 대사를 써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술에 취해 내뱉는 대사나 반복적인 행동 등은 연기인지 실제 행동인지 궁금할 정도. 홍 감독은 영화를 빗대어 자신의 처지에 대해 푸념을 털어놓는가 하면 은근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수많은 영화과 학생들이 나오면 다 뭐할 거야, 걱정이야"라는 문호의 대사에 마냥 폭소를 터뜨릴 수만은 없다. 홍 감독은 확실히 해외에서도 인정할 만한 한국영화계의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그의 스타일에 대해 누구도 자신있게 험담을 늘어놓지 못하지만 발전과 성숙의 징후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가 영화마다 반복을 통해 `인간은 다 똑같다'란 메시지를 설파하듯 한편 한편이 자기복제로 비쳐지기도 한다. 이 정도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예산 규모면 더욱 깊이 있는 통찰을 보이든지, 더 나은 예술적 성취를 이루든지, 아니면 좀더 많은 관객과 만나든지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홍 감독의 성취나 진보 여부를 떠나 세 배우는 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의 시에서 따온 영화 제목처럼 `여자'나 `남자'를 통해 좀더 나은 `미래'를 약속받았다. 마약 스캔들과 누드 영상집으로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하던 성현아는 연기자 복귀의 면죄부를 얻었고 유지태와 김태우는 자연스런 연기로 한층 성숙한 면모를 보여준다. 상영시간 87분. 18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