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최근 연일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책을 비판적인 톤으로 언급, 배경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0일 재계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미국은 미국의 색깔을 없애야 하며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를 위해 주둔하고 있다는 입장에서(부흥지원을) 지속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다음 날 기자들이 발언의 취지를 묻자 "이라크의 재건은 이라크인 밖에 할 수 없다. 미국으로도 유엔으로도 일본으로도 안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17일 이스라엘이 이슬람 무장운동 단체인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압델 아지즈 란티시를 암살하자 "(행동을 묵인하는) 미국에는 미국의 입장이 있지만 나는 용인할 수 없다"며 미국과의 '입장 차'를 강조한 바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해 3월 이라크전 개전에서부터 자위대 파견에 이르기까지 줄곧 미국 정부를 지지하며 보조를 맞춰왔다. 따라서 미국 정부를 겨냥한 그의 잇단고언(苦言)은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언론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자신의 '미국 추종 정책'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이를 비켜가기 위해 다소 의도적으로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거나 향후 유엔중심의 이라크 정책으로의 전환을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최근 이라크 현지의 치안악화 등으로 스페인 등 각국 이라크 주둔군이 잇따라 철수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인 민간인 억류사태가 터진 뒤 집권 자민당에서 조차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 추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불거져나오는 등 논란이 일었다. 규마 후미오(久間章生) 간사장 대리가 지난 13일 강연에서 자위대의 이라크파견은 이라크에서 일본이 미국의 하수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꼴이라고 꼬집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도 21일 한 강연에서 "미국인은 걸프에서 정치를 한 적이 없다. 거기다 단세포여서 자기들의 민주주의가 가장 좋다고 믿고 강요하는 버릇이 있다"며 "그러니 아랍에서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고 미국의 이라크점령정책을 통렬히 비판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민주당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집권 3년을 맞은 고이즈미 정권에 대한 평가를 부탁받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고 밖에말할 수 없다"며 "종합점수를 매기자면 30점"이라며 현정권의 '미국 추종'을 혹평했다. 이처럼 '미국 추종'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고이즈미 총리는 21일 기자들과 만나 이라크정책과 관련, "유엔의 개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외상도 이날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의 전화에서 이라크로의 정권이양에 대비해 '신 유엔안보리 결의'를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등 '유엔 중시'의 메시지가 일본 정부에서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도쿄=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