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개월여간 정치권과 재계를 비롯, 세간에 적잖은 파문을 던졌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8일 중간 수사결과 발표와 함께 사실상 일단락 됐다. 우리 정치사에서 정경유착의 폐해가 집약된 `성역'으로 치부되며 사법사상 단 한 번도 수사의 칼날이 미치지 못했던 불법 대선자금의 실태를 파헤친 이번 수사는 정.재계에 엄청난 파장을 던지면서 오랜 시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인 현직 대통령의 연루 여부에도 검찰이 메스를 가하는 양상을 띠게 됐고, 수사과정에서 현역 의원 등 여야 중견 정치인들과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사상 유례없는 사태를 빚었다. 검찰로선 고질적인 부패구조를 단죄하고 `돈 정치'에 일대 경종을 울렸으며 최고 통치권자의 측근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수사를 벌임으로써 `정치 검찰' 또는 `권력의 시녀'라는 굴레와 왜곡된 이미지를 털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 수사경과 =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 조짐은 작년 7월 굿모닝시티 윤창열(구속) 전 대표의 정관계 로비수사에서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의 4억원 수뢰혐의가 포착되면서 예고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수 있다.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정 의원은 "대선 당시 민주당이 기업으로부터 받은 대선자금이 200억원"이라고 밝히면서 정치권은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고, 검찰은 당시 `구체적 불법행위의 단서가 잡히면 수사할 수 있다'는 원칙적인 수준의 언급을 했다. 그러던 중 검찰은 작년 8월말 증권선물위원회가 대검에 고발한 SK해운 분식회계사건을 수사하면서 SK그룹이 분식회계를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 정치권으로 유입시킨 사실을 밝히면서 수사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다. 이어 검찰은 작년 10월 SK자금을 받은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최돈웅 한나라당의원, 이상수 열린 우리당 의원을 잇따라 소환조사하면서 최 의원이 SK로부터 대선자금 명목으로 100억원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한나라당이 민주당 대선자금에 대한 특검실시를 주장하고 나선지 며칠 후인 11월3일 대검은 SK에서 그치지 않고 대선자금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키로 했다고 공식발표하면서 본격수사에 나섰다. 11월18일 LG홈쇼핑을 시작으로 24일 삼성전기, 27일 현대캐피탈을 각각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의 고삐를 조여가던 검찰은 12월8일 한나라당 불법대선자금의 창구역할을 한 서정우 변호사를 긴급체포하면서 삼성, LG, 현대자동차로부터 한나라당이 수수한 400억대의 불법 대선자금을 밝혀냈다. 이어 검찰은 한화, 롯데,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기타 대기업들이 제공한 불법대선자금을 밝혀내면서 안희정씨, 이상수 의원, 이재정 전의원 등을 통해 조달된 민주당 캠프의 불법자금도 들춰내는 성과도 거뒀다. 이 과정에서 `금배지'들의 `구치소행'도 줄을 이었다. 지난 1월10일 대선 당시 한나라당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영일 의원을 시작으로 1월12일 최돈웅 의원, 1월28일 이재정 전 의원, 이상수 의원, 서청원(이하 한나라당)의원, 1월29일 신경식 의원, 3월5일 박상규 의원이 각각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한편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와 측근비리수사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작년 10월16일 최도술씨를 시작으로 작년 12월3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12월4일 문병욱 썬앤문회장, 12월14일 안희정씨 등 대통령 측근들을 잇따라 구속하기도 했다. ◆ 매머드급 수사팀 활약 = 사안의 중대성 만큼이나 검찰은 200명에 가까운 유례없는 초매머드급 수사팀을 구성, 대선자금 전면 수사착수를 공식발표한 작년 11월부터 4개월 동안 휴일 근무를 밥먹듯 해가며 수사에 임했다. 수사에 착수하면서 대검 중수부는 남기춘 중수1과장, 유재만 중수2과장, 이인규 원주지청장 등 부장검사급 3명과 평검사 12명 등 검사 15명으로 `드림팀'을 꾸렸고 타 지방 검찰청에서 차출한 인력을 포함해 총 100명이 넘는 수사관들을 모았다. 중수부는 특히 기업수사를 위해 작년 서울중앙지검에서 `SK 수사'를 지휘하면서 최태원 SK㈜ 회장 등을 구속했던 이인규 지청장을 발탁하고, 이 지청장과 서울지검에서 호흡을 맞췄던 유일준.한동훈 검사 등을 보강하는 등 수사팀 구성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으로 이어지는 지휘라인의 굳은 의지는 정치권의 끊임없는 `시비'와 재계의 `읍소' 속에도 수사팀이 갈길을 갈 수 있게 한 힘이 됐다. 특히 수사 사령탑인 안 검사장은 송 총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안대희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거침없이 수사를 이끌었다는 평을 얻었다. ◆ 의미와 성과 = 여야 정치권을 수개월동안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으며 `검찰발(發) 정계개편' 이라는 신조어를 남겼고 이번 수사가 정경유착의 튼튼한 고리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점 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거물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정치권에 경종을 울린 점, 기업 또한 더 이상 정치권의 `보호막'에 기댈 수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된 점은 이번 수사가 우리 정치문화에 크게 기여한 부분으로 꼽힌다. 대통령이 공개 천명한 `검찰수사 불개입'의 원칙 속에 검찰은 그야말로 `원없이'수사를 벌임으로써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향해 다가설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 또한큰 성과물로 남겼다. 그리고 성역으로 존재해 온 대선자금에 메스를 대고, 재임 초기인 대통령의 측근인물들의 비리를 단죄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상당부분 회복한 점 또한 검찰로서는 더 없는 영광이 됐다. 임박한 총선 일정 등을 감안, 정치인들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가 일단락되게 됐지만 향후 총선 자금에 대한 검찰 내사설이 벌써부터 흘러나오는 등 검찰의 수사 향배는 섣불리 점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