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에 대한 국세청의 추징결정은 은행과 투신권에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국민은행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은행과 투신사들이 고객들의 신탁손실액을 대신 메워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세청은 다른 은행과 투신사에도 세금을 추징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은행 및 투신권과 국세청간의 법정 공방도 예상된다. ◆ 문제의 발단 =국민은행이 세금을 추징당하게 된 사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환위기 직후인 당시,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회사채에 투자한 신탁상품 가입고객들은 원금을 까먹게 됐다. 국민은행의 경우 고객들이 신탁상품에 가입해 입은 손실은 총 2천50억원. 이에 국민은행은 실적배당형신탁(투자한 유가증권의 수익률에 따라 이자를 지급)에 가입한 고객들을 확정배당형신탁(은행이 원금 보장)으로 갈아타게 했다. 또 은행돈(은행계정)으로 신탁상품 고객들의 원금 손실분을 메워주면서 이를 회계장부상에 손실로 처리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번 정기세무조사에서 이같은 회계처리를 부당한 것으로 판정했다. "신탁손실금을 보전해주기 위해 사용한 금액은 손실로 처리할 수 없다"는게 국세청의 논리다. ◆ 법인세 추징, 논란 불가피 =국세청의 법인세 추징에 대해 국민은행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세심판 청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98년 당시는 금융시장이 위기상황이었다"며 "정부와의 묵시적 합의 하에 금융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쓴 비용이 손실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부가 은행들에 신탁손실 보전을 독려했던 사례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98년 은행연합회는 실적배당신탁을 약정배당신탁으로 전환, 고객들의 원금을 보전해주기로 은행들과 합의한 바 있다. 제일은행 등 일부 은행들은 이같은 결정이 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확약서'도 받아둔 것으로 알려졌다. ◆ 은행들의 손실 =만약 국세청의 이번 추징결정이 최종 확정될 경우 은행들은 수 천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할 전망이다. 지난 98년 당시 시중은행들이 신탁원금 보전을 위해 사용한 금액은 총 4조8천억원에 달한다. 이는 실적배당신탁의 손실분을 메우기 위해 사용한 돈과 약정배당신탁의 손실분을 메우기 위한 돈이 합쳐진 액수다. 국민은행의 사례를 감안할 때 이 가운데 실적배당신탁의 원금보존을 위해 쓰인 돈은 향후 법인세 과세대상이 된다. 은행권은 이 돈을 최소 1조원, 최대 3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선 추가로 3천억∼1조원에 이르는 세금을 물어야 하는 셈이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