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상반기 발효를 목표로 진행 중인 한ㆍ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핵심 조항인 원산지 확인 방식과 관련, '부실 협상' 논란을 빚고 있다.


17일 외교통상부 재정경제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열린 한ㆍ싱가포르 FTA 1차 정부 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싱가포르측 주장을 수용, 수출품 원산지 증명서 발급을 해당 기업에 맡기는 수출자 자율발급제를 협상 초안으로 제시했다.


자율발급제는 세관 등 정부 공공기관이 아닌 생산업자 또는 수출업자가 수출품의 원산지를 스스로 신고하고 증명토록 하는 것으로,기존의 기관발급제와는 달리 원산지 증명에 대한 사실 확인을 전적으로 수입국 세관에 일임하는 제도다.


싱가포르는 전체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제3국 제품의 단순 재수출에 의존하는 중계무역 국가여서 현지 수출자가 중국 동남아 등지의 저가 제품 원산지를 싱가포르로 위장, 수출할 경우 일일이 세관에서 확인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중소 내수기업들은 저가품 수입대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 협상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산업자원부는 이런 문제점을 들어 기관발급제 채택을 주장했으나 싱가포르는 자율발급제가 세계 무역의 추세라는 점을 강조했고,재경부 등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부는 칠레와의 FTA에서 자율발급제를 채택한 점도 감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에 앞서 지난 2002년 싱가포르와 FTA를 발효시킨 일본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로부터의 저가제품 우회 수입 방지를 위해 원산지 증명 기관발급제를 관철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한ㆍ칠레 FTA에 이은 후속 FTA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정부 내 유관 부처는 물론 업계와의 충분한 의견 수렴없이 상대국 주장을 손쉽게 수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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