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에 있는 세계 최초의 흑인 독립국 아이티에서 인도주의적 재앙 위기와 함께 94년과 같은 수만명의 `보트피플' 탈출사태가 우려되면서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반정부 무장세력이 통제권을 확보한 인구 20만의 아이티 제4도시 고나이브에서는 15일 현재 벌써 수만명이 도시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반정부 소요 사태가 격화한 이후 50명 정도가 사망했으며, 외국으로 망명한무장세력 일부도 반정부 대열에 속속 합류하면서 조만간 사태 해결의 가능성 여지는계속 줄어들고 있다. 반정부 무장세력이 통제권을 확보한 아이티 북서부 도시 10여곳은 반정부 세력에 의해 식량 및 연료 보급을 위한 진입로가 모두 차단돼 앞으로 나흘후에는 밀가루,식용유와 다른 생필품의 비상공급이 바닥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외국의 식량원조에 의존하는 학생 9만명 등 빈민 26만8천명을 중심으로인도주의적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국제사회에서 고조하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원조 관계자들은 일주일내로 식량원조가 없으면 대규모 기아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수도 포르토프랭스도 차단돼 식량공급이 중단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인근 카리브해의 자메이카 경찰 당국은 14일 자메이카의 동부 해안으로 망명을요구하며 배를 이용해 도착한 8명의 경찰관들을 포함해 10명의 아이티인들을 억류했다고 밝혔다. 자메이카 이민당국은 이들의 망명 요구를 검토 중이다. 또 아직까지 미국 해안을 향해 떠난 아이티인들의 수가 급증했다는 언론 보도는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사임 압력을 받는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부인이 이번주말 플로리다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티 정부 공보실은 영부인이 장례식 참석을 위해 떠났으나 16일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원조 관계자들은 이번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 국무부는 최대 5만명의 난민들을 관타나모 만 미국 기지에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최근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94년 미군의 개입 사례와는 달리 아이티 정권교체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그 동안 미국 관리들도 다시 군대를 보내는 일은자제하겠다고 분명히 밝혀 왔다. 그러나 파월 장관은 캐나다 및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과 협의해 아이티의 질서 회복을 위해 경찰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을갖고 있다. 현재 아이티는 정규군 부대가 해체된 가운데 약 5천명 규모의 경찰만이 모든 치안을 책임지고 있으나 장비 부족 등으로 반정부 세력에 맞서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알려졌다. 앞서 94년 미국은 90년 선거로 뽑힌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쿠데타로 몰아낸 군부세력의 강압정치를 끝내고 `보트피플' 사태를 멈추도록 하기 위해 당시 빌 클린턴대통령의 지시로 2만명의 미군을 투입해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5년 임기를 마칠 수있도록 했다. 당시 3만명 이상의 아이티 난민들이 관타나모 만 미국 기지에 수용됐으며, 플로리다 해안 등 미국 본토에 도착한 아이티인들도 수천명에 달했다. 현재 이스파니올라 섬을 나누고 있는 도미니카공화국 땅으로도 아이티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들어갈가능성이 있다. 수천명의 굶주린 아이티인들의 난민 유입 사태는 일상적인 전력공급 부족과 물가폭등, 경제난으로 허덕이는 도미니카공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달 도미니카공에서는 반정부 시위로 최소한 6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부상했다. 한때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지지하던 시민들은 경제난이 계속되고 국제사회가 2000년 의회 선거 부정을 이유로 수백만달러의 원조금을 동결하면서 반정부 시위 대열에 속속 합류했다. 750만명 아이티 전체 국민의 평균 수입은 하루 1달러가 조금 넘고 국민의 3분의 1은 만성적인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한편 아이티 야권연합체 `민주주의 강령'은 이날 포르토프랭스에서 1천여명이참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김영섭 특파원 kim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