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하는데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고객을 접대할 때도 50만원이라는 기준선이 왠지 마음에 걸리더군요.접대 상대방의 주민등록번호와 접대목적을 일일이 써야 하는데 외국 바이어인 경우 매번 여권을 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중소 여성의류업체에서 해외마케팅을 맡고 있는 김모 이사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미국 독일 등지의 바이어를 네차례 상대했지만 50만원 이상 접대비를 쓴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합법적인 접대 비용인 데도 괜히 정해진 한도 이상 접대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꺼림칙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인지 건당 50만원 이상 접대할 때는 상대방의 주민등록번호를 적도록 하는 '접대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기업들의 접대비 액수와 건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공작기계 생산업체인 D사의 경우 예전에는 한달 평균 최소 10건 이상이던 50만원 이상 접대비 사용건수가 지난 1월 중에는 4건에 불과했다. 이 회사에서 경리를 담당하는 박모 차장은 접대비 절대액수가 30% 이상 줄었다고 밝혔다. 사전에 회사측에 통보만 하면 50만원 이상 접대비를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데도 대부분의 영업담당자들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확연해진 것. 중견 S사 김모 영업부장은 "비용이 줄어드는 건 좋지만 자칫 영업위축으로 이어져 회사 수익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영업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걱정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접대비 규모가 큰 대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포스코의 경우 올들어 전 부서에 문서양식까지 배포하며 국세청 고시를 따르도록 한 이후 접대비 사용승인 요청이 뚝 끊겼다. 포스코 공장이 있는 광양과 포항 등지에서는 가뜩이나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접대비실명제까지 도입돼 요식업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접대비 지출자들의 이 같은 심리를 반영한 새로운 상술도 출현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지모 사장은 단골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50만원 이상 접대비를 썼을 경우 이를 일정 기간에 걸쳐 50만원 이하로 쪼개 청구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새해 들어 고객 발길이 뜸해진 상황에서 이렇게라도 영업을 계속해야 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접대가 잦은 일부 기업의 부서는 대행사를 통해 고객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우회접대' 묘안도 짜내고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건설업계 관행상 거래 상대방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비즈니스의 기본"이라며 "번거롭지만 어쩔 수 없이 편법을 쓸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체 임원도 "정부가 접대비의 손비인정 한도만 정해주면 되지 접대문화의 건전화 유도라는 명분 아래 사사건건 접대내용에 간섭할 경우 편법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