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경제 수도로 불리는 뭄바이 시내 중심가 브릿지캔디의 한 수입가전 대리점. 아침 시간인데도 물건을 구경하려는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요란스런 차림으로 고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종업원의 모습만으로는 여기가 미국인지 인도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종업원 찬드라양은 "2,3년전만 해도 캠코더 같은 고가 수입품은 매장에 진열할 생각조차 못했으나 지금은 하루에도 20대 이상 팔려나가고 있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뉴델리나 뭄바이 같은 대도시에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쇼핑몰이 들어서고 있지만 주말이면 가는 곳마다 인파가 넘쳐 주차가 힘들 정도다. 인도 현지법인에서 생산되는 현대자동차 산트로(경차 아토스의 변형모델)는 가격이 대당 40만루피(1천만원)나 하는데도 밀려드는 주문으로 언제나 재고가 바닥상태다. TV나 냉장고 세탁기는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은지 이미 오래이다. 소비의 고급화 추세도 그만큼 빨라지고 있다. 브릿지캔디에서 가업으로 백화점을 운영해 왔다는 바라트 갈라씨는 "지난해에는 매출이 30%나 늘었다"며 "한벌에 5만루피(1백25만원) 하는 이탈리아 정장이 하루에도 4∼5벌씩 팔린다"고 인도의 소비붐을 설명한다. 10억 인구의 인도가 거대 소비시장으로 솟아오르고 있다.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백50달러 안팎. 하루 1달러 미만 생활자 30%를 제외해도 1인당 국민소득은 6백40달러에 불과하다. 단순 소득통계 만으로는 소비붐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의 물가수준 등과 비교한 실질구매력을 따져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도의 실질구매력 평가수준(PPP)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 보다도 훨씬 높다. KOTRA 첸나이 윤효춘 무역관장은 "인도인구의 10% 1억명이 6루피(1백50원)짜리 콜라 한병을 마셔도 매출이 1백50억원"이라고 가공할 구매력을 설명했다. 소비의 저변 확대를 의미하는 중산층의 증가 역시 고무적이다. 4,5년 전만해도 인도에는 부자와 극빈자 두 부류의 계층만 있었다. 5성급 호텔에서 수억원을 들여 사흘동안 결혼식 피로연을 여는 극소수 부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하루 세끼 먹기도 힘든 빈곤층이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 둘 사이에 새로운 계층이 생겼다. 영어와 IT기술을 겸비한 값싼 노동력을 찾아 외국자본이 속속 유입되면서 고소득 샐러리맨들의 숫자가 급속히 불어나고 있는 것. 스탠더드 차타드 은행 인도지점의 비쉬 라마찬드란 지역본부장은 "지난 4∼5년 사이에 도시 근로자들의 소득이 15∼20% 가량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인도 정부는 10억 인구의 25∼30% 수준인 2억5천만∼3억여명을 중산층으로 보고 있다. 델리 소재 싱크탱크인 국가응용경제연구위원회(NCAER)는 전체 인구의 60%가 넘는 가계가 중산층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범위를 좁혀 인도 정부가 부유층으로 분류하는 연간 수입 1백90만루피(4천7백50만원) 이상 인구(8%)만도 8천만명에 달한다. 남한 전체 인구의 두배 가까운 수준이니 인도의 구매력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인도의 소비시장이 무한대로 커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도 자동차 공업협회는 2010년엔 인도의 승용차시장 규모가 2백4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2천만대가 팔린 휴대폰 시장은 향후 18개월 안에 두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국은행의 인도은행 인수 러시를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조흥은행 국성호 인도지점장은 "스탠더드 차타드 은행 등 소매금융 전문 외국은행들이 전국에 지점망을 갖춘 인도은행들을 인수하고 있다"면서 "한국보다 신용도가 낮은 인도은행들에 외국계 은행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깐깐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까지 "연회비 없이 신용카드를 만들어 주겠다"며 고객 확보에 나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인도 최대 은행인 ICICI은행의 찬다 코차르 이사는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며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수입원이 안정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소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 같다"는 설명이다. ICICI은행의 또다른 관계자는 "이자율 하락과 고객들의 소득 증가에 힘입어 주택대출이나 카드대출 등 소비자금융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인도 GDP의 3%에 불과하다"면서 "선진국의 30%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비시장이 더 확대될 여지는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뭄바이(인도)=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