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들여오는 고철덩어리를 컨테이너 박스에 넣어 왔습니다." 전기로 업체인 H사 관계자의 기막힌 하소연이다. 미국에서 벌크선으로 고철을 수입해 오던 H사는 지난해 3ㆍ4분기부터 아시아지역으로 들어오는 빈 컨테이너에 고철을 채워오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벌크선 운임료가 주범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의 경우 태평양 노선의 컨테이너선 운임이 t당 20달러로 벌크선 운임 40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며 "10여년 전 중동산 철스크랩을 컨테이너선으로 운반한 경우는 있지만 최근 상황은 극히 이례적"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원자재 수입 업체들 사이에 벌크선 확보전이 한창이다. 예전 같으면 3개월 주기로 체결되던 입찰도 시황이 불투명해 하루 단위로 빡빡해졌다. 배잡기도 어려워졌지만 원하는 가격에 낙찰받기는 포기한지 오래라는게 이들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중국이 원자재를 싹쓸이해 가는 통에 배들이 중국 항로에 묶이면서 생긴 '쏠림 현상' 탓이다. CJ 정정헌 상무는 "철광석 수송에 배가 묶이다 보니 석탄 원목 곡물 등 기타 원자재 운반선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고충을 호소했다. 여기에 일부 항구의 경우 병목 현상까지 겹쳐 선박 확보난을 증폭시키고 있다. 밀 등 곡물과 석탄의 주요 수출항인 호주 항구가 대표적 케이스. 범양상선 전항윤 과장은 "철광석 곡물 석탄 수요가 급증하면서 호주 항만은 연일 만원"이라며 "때문에 중국 항구처럼 호주 항구도 한 번 배가 입항했다 빠져 나오는 데 2주일 이상 걸리는 체선(滯船) 현상이 극심하다"고 말했다. 벌크선을 운용하는 해운선사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대부분 국제 해운선사들로부터 빌려 쓰는 용선(傭船) 숫자가 자사가 보유한 사선(社船)에 비해 최대 5배수에 달하기 때문이다. 주력 사업이 벌크선 부문인 범양상선의 경우 사선은 50척인 데 비해 용선은 1백50∼2백척에 이른다. 한진해운 역시 사선 25척에 용선은 장ㆍ단기를 합쳐 1백20척 안팎. 한진해운 권석훈 부장은 "현재의 해운시장은 변화가 많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라며 "선사들도 적정한 수준으로 선박 운임료를 책정하느라 매일 피말리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병일ㆍ이심기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