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4일 밤. 베트남 최대 상업도시인 호치민시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인 사이공강 인근 동 커이(Dong Khoi)거리에 대규모 오토바이 부대가 나타났다. 연인끼리 혹은 어린 자녀를 태운 수천대의 오토바이들이 4차선 거리를 완전히 점령했다. 젊은이들의 옷차림은 차려입은 듯 말끔했다. 많은 어린이들과 젊은 여성들은 산타복장을 하고 있었다. 주변 상가와 식당은 대부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있었고,호텔에서는 화려한 행사들이 펼쳐졌다. 3백50만 호치민 시민들이 거의 참여한 자연발생적인 거대한 크리스마스 축제였다. 아직도 호텔 층층마다 공안(公安)요원이 감시하는 공산주의 국가 베트남. 하지만 생활과 사고방식은 벌써 세계의 변방이 아닌 당당한 중심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웃 캄보디아. 오랜 내전으로 폐허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했던 이 나라도 꿈틀거리고 있다. 최근 정치가 안정되면서 외국인 투자가 속속 늘어나고,가난에 허덕이던 젊은이들은 배움터와 일터로 향하고 있다. 태국은 동남아시아의 대표주자로 성장하고 있다. 탁신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단단한 안전판을 구축해 놓았고,동남아시장의 통합과 외국인 투자유치라는 듀얼 트랙(Dual Track)정책을 통해 경제강국을 꿈꾸고 있다. 관광산업으로 앉아서 쉽게 돈벌던 '과거'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동남아시아만이 아니다. 중국과 인도가 세계의 주축 국가로 부상하고,10년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 경제도 부활하고 있다. 30억 아시아는 성장 탄력을 받으며 세계의 자본과 자산을 빨아들이는 세계 경제의 거대한 블랙홀로 부상했다. 과거 유럽이나 미국이 해왔던 것 처럼 21세기는 '아시아 중심 시대'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지난해 11월말까지 1천5억달러의 외국인 투자계약을 맺었다. 하루 3억달러꼴로 외국인 투자가 발표되는 것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외자유치국의 자리를 굳건히 했다. 외국인들이 지금까지 중국과 맺은 투자계약은 모두 9천2백85만달러. 올 상반기안에 외국인투자 1조달러시대를 열 전망이다. 이에따라 시베리아 원목의 80%가 중국으로 가는 등 대부분의 원자재들도 중국 대륙을 향하고 있다. 중국의 수요 급증으로 지난해 니켈 알루미늄 등 금속값이 두배이상 오르고 이들을 실어나르는 운송료도 4배이상 급등했을 정도다. 인재를 찾는 기업들도 아시아로 몰려든다. 싼 임금만이 아닌 고급 인력을 찾아 아시아로 오고 있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업체 구글(Google)이 상반기중 인도에 R&D(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미국기업의 신규 IT기술 개발의 3분의 1이상이 인도 등 아시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게 미국 노동부의 발표다. 외국의 투자와 인재를 유치하려는 아시아 국가들의 노력도 눈여겨 볼만하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해외 고급두뇌를 과감히 끌어들여야 한다는 현실을 인식,외국인취업규제완화 비자제도개선 등에 발빠르게 나서고있다. 교육 유통 문화의 아시아 허브를 만들기 위한 국가간 선의의 경쟁도 날로 치열해 지고 있다. 아시아가 변하면서 세계는 '아시아'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고 있는 것이다. 호치민(베트남)=육동인 기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