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은행들이 SK(주) 경영권 방어의 우호세력으로 나서기로 한 것은 소버린자산운용의 최근 행보가 투자자 수준을 넘어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 의도를 곳곳에 내비치고 있는데 따른 대응조치로 풀이된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정유나 통신과 같은 기간산업이 외국 금융자본에 넘어갈 경우 빚어질 수 있는 혼란이 금융권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은행들이 우호세력으로 나서기로 한 배경을 설명했다. ◆ 자사주 매각부터 SK그룹과 하나 신한 산업 등 주요 은행들은 소버린이 다양한 공격수단을 동원할 것에 대비해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어수단을 동원키로 했다. 우선 시중은행들은 SK㈜ 자사주를 인수하는 방법을 통해 '백기사(경영권 방어를 돕는 제3자)'로 나서기로 했다. 현재 10.41%인 SK㈜ 자사주는 의결권이 중립으로 묶여 있다. 그러나 이를 인수할 경우 의결권이 되살아나며 최태원 회장측의 우호지분으로 계산이 가능하다. 최 회장측은 친척과 계열사를 포함해 15.93%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우리사주 4.3%와 지난 10월 해외파킹(위장분산)했던 1천만주 가운데 일부를 사들인 동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우호적 기관투자가 지분 4.9%를 포함해 25.13%를 확보하고 있다.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되면 최 회장측 지분은 모두 35.54%가 되어 경영권 방어에 한층 유리해진다. ◆ 출자총액제한도 변수 소버린이 5%의 지분을 매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외국인투자촉진법상 단일 외국인 지분이 10%를 넘으면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분류돼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으로 묶인 대주주 의결권이 부활된다. 그러나 소버린이 지분을 10% 미만으로 줄이면 다시 출자총액제한 규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소버린이 지분의 5% 이상을 자신의 우호세력에 팔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최 회장측 의결권은 15.93%에서 6.47%로 낮아진다. SK C&C가 보유한 SK㈜ 지분 7.35%와 SK건설 보유지분 2.11%가 의결권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SK그룹은 두 가지 방법을 통해 맞대응할 계획이다. 우선 자사주 10.41%를 단일 외국인에게 넘겨 계속 '외투기업'으로 남는다는 것. 이 방법은 자사주 의결권도 살리고 최 회장측 의결권도 묶이지 않도록 하는 등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또 단일 외국인과 전략적 제휴를 맺을 경우 자사주 매각에 반대하는 소버린보다 명분에서 앞설 수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의결권이 제한되는 SK C&C와 SK건설 보유지분을 시중은행이 떠안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 경우엔 자사주 10.41%와 의결권이 묶인 SK㈜ 지분 9.46% 등 모두 19.87%를 시중은행이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량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약점이 있다. 증권계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자금부담이 확대되면서 SK그룹 및 시중은행과 소버린간 대결이 돈이 많은 쪽이 이기는 머니게임으로 흐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소버린 법적대응 나설 듯 소버린은 이미 자사주의 처리가 SK㈜ 경영권 인수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다. 소버린의 제임스 피터 대표(CEO)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자사주는 모든 주주의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변화를 충분히 예측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버린은 SK㈜가 18일 이사회에서 자사주 매각 방침을 확정하고 실행에 옮길 경우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설게 분명하다. 증권계 한 관계자는 "SK㈜가 자사주 매각에 성공하면 내년 정기주총에서 경영권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소버린이 다양한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어 법원의 판단이 최종적 변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태웅ㆍ김인식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