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에 저항한 대표적 재야운동가인 고(故)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됐다. 8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유족들에 따르면 장 선생 사망 직후 사체를 찍은필름 1통과 장 선생 장남 호권씨가 사건 직후 기록한 현장메모, 목격자 김모씨의 최초 진술 녹음테이프 등이 발견됐다. 의문사위는 "이번에 발견된 필름에 양쪽 팔 겨드랑이 안쪽의 멍든 부분, 엉덩이와 팔의 주삿바늘 흔적, 상처가 난 머리 모습 등이 담긴 13컷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며 국내외 5개 기관에 감정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의문사위는 지난달 송파구 거여동 장 선생 부인 김희숙(79)씨 자택에서 실지조사를 벌여 필름을 발견했다. 장 선생 장남 호권씨는 "75년 사건 당시 아버지의 시신을 집으로 모시고 와 의사 3명과 함께 검시할 때 찍은 필름이고 누가 찍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주삿바늘 흔적, 머리 상처, 멍든 부분 등 의심나는 부분을 모두 찍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국내 상황 때문에 서울 주재 교도통신 특파원이 일본에 필름을 가지고 가서 현상을 해 국내로 다시 들여왔다"며 "이번에 사진도 함께 발견됐으나 오래돼 판독이 불가능했고 필름은 통째로 의문사위에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동안 집안의 어려운 사정으로 이사를 자주 다녀 없어진 줄 알았는데 의문사위 조사관들과 함께 유품을 뒤지다 필름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필름과 함께 호권씨가 사건 직후 현장을 방문해 그림 등을 그려가며 편지지에상세히 묘사한 5∼6장의 메모도 함께 발견됨에 따라 1기 의문사위에서 확보한 장 선생의 사망시간 등 사고당일 행적을 적은 중앙정보부 문서와도 비교.가능하게 됐다. 의문사위는 "현재 필름은 조사.진행중이어서 따로 공개할 수 없고 의문사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며 새로운 증거를 확보한 만큼 정밀 검증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고 장준하 선생은 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등반하다가 12m 아래 절벽으로 추락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기 의문사위는 "추락사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나 구체적인 사망경위를 확정하지 못했다"며 진상규명 불능사건으로 처리했고 2기 의문사위는 이를 넘겨받아 재조사중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 기자 jamin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