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말, 일본 도쿄역. 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삼십 분쯤 지났을까? 한국인 한 분이 황당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나타났다. "아니, 아무런 사전연락도 없이 이렇게 불쑥 나타나 업체를 찾아내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뭐 슈퍼맨도 아니고." KOTRA 도쿄지사 직원은 잔뜩 볼멘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워낙 아는게 없다보니…." 나는 허리를 깊숙이 굽혀 사과했다. 한 시간 전, 나는 도쿄역에 내려 KOTRA 도쿄지사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간단히 나를 소개한 후 "일본의 피팅(Fitting) 관련업체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난데없는 전화를 받은 담당직원은 "피팅이 뭐냐?"는 물음부터 했다. 짧은 설명을 들은 그는 길 잃은 아이 데려가는 심정으로 부랴부랴 달려왔던 것이다. KOTRA 도쿄지사 전화번호 하나만 달랑 들고나선 일본행. 나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있었다. 기술개발과 수출. 그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생각이었다. 내가 피팅업계에 뛰어든 것은 1977년이었다. 피팅이란 고압에 사용되는 유압용관이음쇠를 말한다. 주로 I, L, T, +자 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저압 중저압 고압 초고압 등의 제품군이 생산된다. 처음에는 미국의 P사로부터 피팅제품을 수입했다. P사는 밸브, 패킹, 필터, 유압실린더 등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회사다. 수입상을 시작한 지 몇 년만에 국내 시장의 60% 정도를 점유했다. 그런데 외국 제품을 수입하다보니 문제점이 많았다. 납기를 맞추기 어려웠고, 수입한 제품이 서로 맞지 않아 못쓰게 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직접 만들어 버리자.' 고교시절 기계공학을 공부한 나는 이에 불편을 느끼고 제조를 결심했다. 1980년부터 피팅 제품을 생산했는데 이게 보는 거와 영 달랐다. 내 눈에도 우리 제품은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수년 동안 갖은 노력을 했지만 제품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행을 결정한 것이다. 무턱대고 찾아온 나를 KOTRA 도쿄지사 직원은 아주 성심껏 도와주었다. 그는 여러 가지를 조사한 후 일본상공회의소로 나를 데려갔다. 그 곳에서 장시간 상담을 한 후 '도키야정기(精機)'라는 곳을 찾아갔다. 도쿄시 외곽 3백평 정도의 공장에 4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 그 회사는 아주 작았다. 그러나 품질은 기가 막혔다. 한 마디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등에 지고 온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우리 회사제품을 꺼내놓았다. 한마디로 도라지와 인삼의 수준.창피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도 닛블(피팅의 일본어)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제품을 사주십시오." "쓰미마셍(미안합니다)." 한마디로 거절이었다. 일본의 주요기업에 납품을 하고 있는 도키야사가 질 낮은 우리 제품을 수입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 물건을 팔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일부러 벌인 우회전략이었다. 오랫동안 나의 설명을 들은 도키야사의 기술진은 이듬해 우리의 마산 공장을 방문했다. 이어 기술이전과 수출협약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품질관리와 생산분야에 두 명의 기술진을 6개월 동안 파견해 주었다. 도키야사의 기술진이 돌아간 다음에는 일본으로 연수생을 계속 파견했다. 12명의 연수생이 기술을 배워왔다. 그런데 문제는 기술이전을 기피하는 일본인의 특성답게 핵심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었다. 애가 닳았던 나는 꾀 하나를 생각해냈다. "자꾸 불량품을 만들어라." 불량품이 나오자 일본 기술진들이 문제점을 지적하며 해결방안을 가르쳐줬다. 일부러 불량품을 만들고 해법을 배우는 사이 어느새 우리 기술은 최고를 향하고 있었다. 기술을 배우는 동안 여러 차례 손가락에 굳은 살이 생기고 손바닥이 문드러졌다.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매출이 뚝 떨어졌다. 역시 세계 기계공업의 본산인 미국에 진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998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시카고 본부로 찾아갔다. 전화번호부를 뒤지고 에이전시를 통해 정보를 취합하니 월드와이드사가 공략 대상으로 좁혀졌다. 시카고에 소재한 피팅 판매업체였다. 몇 번의 연락 끝에 상담이 이루어진 담당자는 우리 제품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혹시 일본 샘플을 가져온 것 아닙니까?" "의심스러우면 샘플제작을 의뢰해보면 알 것 아닙니까?" 그들은 여러 가지를 조사하고 꼼꼼히 따져보더니 우리 공장을 방문했다. 얼마 후 월드와이드사와 2백만달러 공급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단번에 2백만달러 수출고를 이룩한 쾌거였다. 삼원테크는 기술연구소를 설립하여 매년 2건 이상의 특허를 받아내고 있다. 삼원이 만든 피팅 제품은 누유(漏油)가 전혀 없다. 대부분의 피팅 제품은 이음쇠의 끝 부분에 O-Ring이라는 패킹이 부착돼 있다. 그런데 피팅을 돌려 조립하다보면 O-Ring이 밀려 제대로 흡착되지 않는다. 삼원의 피팅은 90도로 패인 홈을 55도로 파 O-Ring이 절대로 탈착되지 않게 개발했다. 단순한 아이디어인 것 같지만 이는 세계적 특허기술이다. 또한 기존의 나사식 피팅을 개선하여 민자형 원스톱 피팅이라는 깜짝 놀랄 제품을 곧 출시할 예정이다. 작은 차이가 세계를 누빌 수 있다는 교훈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특허제품 매출액도 전체 매출액의 55%를 넘고 있다. 삼원테크의 제품은 4천종에 이르며 현재 연간 1천8백만달러 어치를 수출하고 있다. 단조소재 유압용관이음쇠 제품 부문 세계 1위의 제조기술 및 품질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2000년에는 중국 칭다오에 삼왕금속유한공사라는 투자법인을 설립, 단조 및 CNC공장을 설립했다. 우리 기업의 중국 진출에 대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싼 맛에 끌려 너무 성급하게 중국에 기술이전을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삼원테크는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배우는데 10년이 걸렸다. 그런데 짧은 시간에 중국에 기술을 이전해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중국을 경계하며 새로운 수출전략 수립에 고심해야 할 것이다. ----------------------------------------------------------------- [ 이택우 사장 약력 ] 52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 출생 77년 동아대 전기공학과 졸업 86년 동아대 대학원 졸업 76년 울산한국석유화학지원공단 근무 77년 왕성상사 창업 78년 왕성정밀 창업 93년 삼원금속 설립 95년 창원전문대 겸임교수 2002년 삼원테크로 사명 변경 2003년 경상남도 경제통상정책 자문위원 2003년 40회 무역의날 금탑산업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