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소유ㆍ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허점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차단과 지주회사 전환,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 유지, 그룹 총수 1인의 독주체제 견제 등을 골자로 하는 대기업 정책이 최근 들어 시장에서부터 외면받는 모습이다. 금융시장은 물론 정부 스스로도 위기 상황이 닥칠 때면 주주와 해당 기업, 그리고 시장참가자간 합리적인 위험 분담보다는 지배주주의 무한 책임과 그룹 차원의 총체적인 대책을 먼저 요구하는 자기 모순에 빠져 있다. LG카드 유동성 위기는 이같은 문제를 한꺼번에 드러낸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 지주회사의 한계 정부는 △지배구조 단순화 △기업 독립경영 △경영 투명성 등을 이유로 지주회사 체제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발표하며 지주회사에 대해서는 출자총액 규제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지주회사 체제는 자금동원력 한계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데다 재무적 위기관리에는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LG그룹이 하나로 통신 인수에 실패한 것은 무엇보다 지주사인 ㈜LG의 지원 능력 한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주사는 부채비율을 1백%로 제한받는 등 대규모 신규 투자에 나서기에는 실제 제약이 많다. 계열사의 지원이 차단되면서 개별기업의 위험이 노출되는 결과도 나타났다. 그룹의 경영권이 일거에 탈취당할 수도 있는 위험성이 노출된 점도 우려할 만한 일이다. SK에 대한 소버린의 주식 매집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 채권단이 지주회사의 주식 담보를 요구했던 것도 비슷한 위험성을 재인식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 금융분리 정책의 허점 정부는 산업과 금융의 분리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박탈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공정거래법은 사업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를 분리토록 규정하면서 금융계열사에 대한 다른 사업 계열사의 지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놨다. 바로 이 때문에 LG카드는 LG 계열사면서도 지주사로 편입되지 못했고 경영 위험을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이는 경영 위험이 계열사 전체로 전가되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경영 안정성을 의심하는 금융회사들이 대거 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위기를 오히려 앞당기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났던 측면은 부인할 수 없다. 굳이 LG카드에만 채권단의 자금 회수가 집중됐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는 지적이다. ◆ 대주주의 권한과 책임 정부는 줄곧 대주주는 주식 지분율 만큼만 경영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공정위는 의결권 승수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까지 대주주 권한을 약화시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채권단은 대주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요구했다. 주식회사는 투자지분만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채권단은 LG카드의 대주주 지분 축소를 더욱 위험하게 받아들였고 오히려 증자를 통해 계열사 지분을 늘리고 대주주가 연대보증을 서도록 하며 그룹지배권까지 담보로 요구하는 등 무한책임을 강요했다. ◆ 시장은 정부와 달랐다 그러나 금융권은 여전히 정부 정책과는 전혀 다른 지배구조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스스로도 지난 3월 카드채 위기 때 그룹계열사들의 증자 참여를 강제했던 전례도 있다. 이인권 한국경제연구원 법경제연구센터 소장은 "지주회사의 통합적인 리스크 관리에 허점이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지주회사 방향이 옳더라도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한지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광선 중앙대 교수(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원장)는 "무분별한 계열사 지원이 차단된 것은 궁극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면서도 "정부 의지만큼 시장 메커니즘이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