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출신 패션 디자이너 옌스 라우게센(JensLaugesen. 36)은 작품보다 이력이 먼저 튄다. 파리 오트 쿠튀르 스쿨에서의 수학은 디자이너 지망생으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이후 패션 매니지먼트와 패션 저널리즘까지 공부하고 실무를 익힌 경력은 디자이너 세계에서 매우 독특한 경우에 속한다. 영국패션협회와 패션부티크 톱숍(Topshop)이 공동수여하는 뉴제너레이션상을 2회 연속 수상하는 등 '무서운 신예'로 떠오르고 있는 그는 이번 프레타포르테 부산2003(19-22일, 부산 벡스코)에서 가장 주목받는 얼굴이었다. 그는 자신의 패션쇼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패션스타일의 창조성 못지 않게 재정과 마케팅 등 패션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정한 국제 패션비즈니스맨이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다. 여느 디자이너들과 그를 확연히 구분시키는 대목이었다. 최근 1-2년 사이 부쩍 주가가 오르고 있는 그는 현재 일본에 일곱 군데와 자신의 활동근거지인 런던을 포함, 모두 15개 매장을 갖고 있다. --이번 컬렉션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부드러운 페미니즘이라고 할까. 코튼 소재에 레이어드룩이 그런 생각을 반영했다고 보면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상반되는 것들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 모핑(morphing)기법을 활용했다.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재구축, 통합하는 것(HybridReconstructuion)은 내나름의 패션철학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내 옷은 전통적인 발상과는 다른, 포스트 모더니즘조차 사그러들고 있는 오늘날에 어울리는 지적이고 개념적인 옷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21세기의 트렌드는 '혼성'으로부터 나오리라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흑백과 회색 등 무채색을 선호하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무채색은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디테일을 잘 보여준다. 나는 시각적인 효과에 집착하기보다는 만드는 과정의 진실과 정직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야만 옷도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 세계적인 추세를 보더라도 막연하고 애매한 유행의 리바이벌, 지나친 문양과 프린트, 장식의 사용 등은 줄어들고 있다. 오늘날 패션은 건축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평소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런던의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입었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또 살면서 보고 듣는 이런저런 것들이 작업할 때 자연스럽게 떠올라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인지 요즘 나의 옷들은 점차 기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디자이너가 마음에 품어야 할 최종 대상도 결국 소비자 아니겠는가?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자주 보는가? ▲작업을 할 때는 가급적 보지 않는다. 나만의 개성을 도출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영향받았거나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있는가? ▲발렌시아가는 조각적 구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브 생 로랑은 이미 70년대에 유니섹스 스타일을 만들었다는 선구적 감각에서, 그리고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cons)의 디자이너인 레이 카와쿠보는 동양(일본)과 유럽의 문화를 잘 매치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유니섹스 룩을 좋아하나? ▲매우 선호한다. 그런 작업을 많이 하고 싶다. 양면성은 언제나 매력적이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어떤 브랜드를 즐겨 입나? ▲빈티지 룩을 좋아한다. --일본과 홍콩에 매장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아시아 여성들의 옷입기를 어떻게 보는가? ▲보편적으로 아시아 여성들은 유럽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한국 여성 또한 스타일에 민감하며, 너무 섹시하지도 않고 너무 정장 스타일도 아닌, 각자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소화하는 것 같다. 이에 비해 일본 여성들은 아방가르드에 좀더 관심이 있는 것같고. --한국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나? ▲파리에서 활동중인 김지해를 잘 안다. 한국은 음식과 사람들이 정말 좋다. 초대한다면 언제든 다시 오고 싶다.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고려중이지만 아직은 막연히 생각해보는 수준이다. --이번 행사에 대한 전반적 인상을 말해달라. ▲프레타포르테 부산은 전문성과 계획성을 갖춘 좋은 이벤트다. 잘 키우면 아시아의 대표적 컬렉션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나 역시 한국에 진출한다면 우선 부산에서 사업 파트너를 찾고 싶다. (부산=연합뉴스) 이종호 기자 yesn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