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31일 제주4.3사건에 대해 국정 책임자로서 사과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에서 최대 비극중 하나로 꼽히는 4.3사건을 반세기만에 매듭을 풀게됐다. 노 대통령이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당시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 인정한 것은 그동안 `좌익의 반란 진압을 위한정당한 공권력 행사'라는 규정에 가리어졌던 무고한 양민의 희생 및 정부 공권력의책임을 분명히 드러낸 공식적인 역사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제주도민의 신원(伸寃)일 뿐 아니라, 반세기 넘게 한반도에 씌워져 있던냉전과 분단의 역사가 한꺼풀 더 벗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4.19와 `부마사태' `광주사태'와 그 희생자들은 4.3사건에 비해 빠른 시일내에민주화운동과 민주유공자로 재해석되고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뤄졌으나 4.3사건의 진상규명은 충돌의 쌍방이 남북간 이념대결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금기시돼다 지난 9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거론되기 시작, 10여년만에 일단락된 것이다. 4.3사건에 대해선 지난 김대중(金大中) 정부때 이미 특별법 제정을 통해 정부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돼 최근 진상조사 보고서를 확정하고, `희생자' 규정과 명예회복, 보상, 위령공원 조성 등 각종 후속조치가 준비돼왔지만 노 대통령의공식 사과 표명으로 이러한 조치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이날 제주도민과 간담회에서 "제주도민들은 국제적인 냉정과 민족분단이 몰고 온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입었다"고 적시하고 그러나 "이제 과거를 정리하는 노력과 함께 제주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4.3사건 진상규명과 사과의 궁극적 의미를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제주도민 외의 다른 국민에게도 "과거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희생자와 유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난날 과오를 반성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룩해 더욱 밝은 미래를 기약하자는 데 그 뜻이있다"며 "화해와 협력으로 이 땅에서 모든 대립을 종식시키고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와 세계화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다만 진상보고서 채택 과정에서 드러났듯 4.3 사건에 대한 기존 해석을 지지하는 보수층의 반발심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어서 앞으로 후속조치를 시행하는과정에서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 노 대통령이 제주도민과 간담회에서 과거사 진상규명의 의미를 설명하는 동시에"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분들의 충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도 이를 의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4.3사건 사과는 과거 정부 시절의 무고한 양민 피해에 대해 현 정부의 행정수반이 정부의 영속성을 이유로 공식 입장을 표명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98년 드레퓌스 사건 100주년을 맞아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을 사과한 사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98년 아프리카 우간다를 방문해 노예제도의 잘못을 사과한 사례, 크메르 루주 지도자키우 삼판과 누온 체아가 70년대 `킬링 필드' 학살에 대해 98년 사과한 사례 등을들어 4.3사건에 대해서도 정부의 입장표명을 요구해 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정부 사과를 공약했고, 특히 진상보고서가 채택된 뒤 시만단체뿐 아니라 학자 등 전문가 대다수가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과 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후세에 국가의 명예와 존엄성, 역사의 엄중함을 일깨우는 역사 바로잡기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4.3 사건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유족 보상'을 약속하면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받은 사람에 대해 전면 재조사해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기자 un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