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표와 국회 시정연설 등 메가톤급 발언이 이어지면서 재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환율 하락과 투자 소비 위축 등 가뜩이나 대내외 환경이 어려운 마당에 새로운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여 재계는 몸을 낮춘채 눈치만 살피고 있다. 16일 열기로 돼있던 전경련 회장단 회의도 돌연 다음주 23일로 연기됐다. 그만큼 재계가 혼란스럽다는 얘기다. 게다가 검찰이 SK 비자금 사건을 다른 기업으로까지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않은 재계로선 경영활동 위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계는 13일 노 대통령의 시정 연설에 대해 원론적인 환영 입장을 밝혔으나 공식적인 코멘트 외에는 다른 모든 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 대기업 고위관계자는 "재신임 발언과 시정연설이 앞으로 정치 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라며 "뾰족한 대책이랄 게 없고 빨리 정국이 안정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에 착수했던 대부분 기업들은 일단 모든 작업을 중단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일상적인 기업경영마저 포기할 수는 없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사업계획을 세워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집행이 어려워 4·4분기에 실행키로 했던 투자도 당분간 유보되는 분위기다. 한 기업 관계자는 "경기가 불투명해 올해 계획했던 투자를 4·4분기에 집행하려고 했지만 이것마저 어려워졌다"며 "내년에도 적어도 총선까지는 투자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계를 더욱 긴장케 하는 것은 정치자금 수사의 확대 조짐이다. 노 대통령이 정치자금법 공소시효의 연장을 제안한데다 검찰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 있어서다. 재계는 이번 일을 계기로 비자금 수사가 다른 기업들에도 파급되는 것은 물론 '마녀사냥식'으로까지 번지는 것은 아니냐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재계는 또 사회불안이 가속화되면서 노사대립이 격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노사분규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데 맞서 노동계가 과격한 입장을 제시할 경우 춘투 하투에 이어 동투(冬鬪)로까지 이어지면서 기업경영을 압박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재계는 재신임 정국이 가닥을 잡더라도 개혁드라이브가 강행되면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며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재신임을 앞두고 정부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정책을 쏟아낼 경우 혼란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이 신임을 얻어 강력한 개혁정책을 펼 경우 기업경영을 옥죌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재신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의도로 부동산 공개념 등의 정책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재신임 이후엔 보다 급진적인 정책이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재계는 어차피 닥친 재신임 일정이라면 정부와 정치권이 논의를 거쳐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가닥을 잡아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재계관계자는 "이번 문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합리적으로 해결돼 국정이 안정되고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정태웅·장경영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