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20년 앞서 근골격계 질환 문제를 겪은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 미국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이 회사 기술연구소의 인공공학실험실을 들어서면 병원에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 인체해부도와 근골격 모형 등이 표준작업 매뉴얼과 함께 곳곳에 놓여있다. "회사와 노동조합이 인간공학위원회를 구성해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소의 밥 팍스 박사(인간공학 전공)은 지난 84년 미국 자동차 노조에서 근골격계 질환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이후 GM 등 미국의 산업계가 어떻게 근골격계 질환에 대처해왔는지를 설명했다. 팍스 박사는 미국에선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사용자의 예방 의무사항을 법제화하기보다 노사 자율로 예방책과 판정기준을 마련해 시행한다고 말했다. 그 기준은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이 마련해 권고하고 있는 예방적 인간공학 관리프로그램이다. 이같은 미국의 근골격계 대처 방안은 사용자의 예방 의무를 법제화한 한국의 사정과는 대조적이다. ◆인간공학(ergonomics)프로그램을 통한 예방=GM 역시 다른 사업장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84년 노동조합측의 문제 제기로 근골격계 질환이 산업재해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GM은 87년 노사합의를 거쳐 근골격계 질환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예방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GM의 예방 프로그램은 노·사전문가,의료진,인간공학 전문가 등 6∼8명으로 인간공학위원회를 구성,근골격계 질환을 발생시키는 유해요인 조사를 통한 작업환경 개선과 근로자에 대한 예방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근로자들은 정기적으로 작업 자세,작업 반경 등에 관한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GM연구소의 존 밀 박사(인간공학)는 "미시간대학과 산학공동으로 작성한 설문지를 근로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돌려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시키는 사업장의 유해요인을 조사해 시정하고 있다"며 "우리가 개발한 이 설문지는 자동차업종의 다른 업체들이 벤치마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연방 산업안전보건청에서도 참고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로 인한 근로자의 질환 발생을 예방하는 게 기업과 근로자 모두 윈-윈(win-win)하는 길입니다." 밀 박사는 GM이 근골격계 질환 예방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하면서 노사간 인식전환을 통한 협력을 강조했다. GM에선 지난 20년동안 예방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실시한 결과 전체 산재 사고가 9분의1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며 근골격계 질환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는 "올 연말에는 관계사인 한국의 GM대우에 근골격계 전문가를 보내 교육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합리적인 자율지침과 판정=워싱턴 소재 미국의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엘리노 길 정책담당 과장은 "근골격계질환에 관한 법률을 강제로 시행하는 것에 기업들이 부담을 느껴 정부에서 산재예방 지침(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의학적으로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근골격계질환 판정을 둘러싼 판정시비를 막기 위해 의사뿐 아니라 인간공학전문가들이 참여해 작업관련성에 대해 철저한 평가를 내린다. 특히 미국에선 산재판정 환자의 요양시 휴업급여 수준이 평균임금의 60∼70%에 불과해 '가짜 의심 환자'가 적다고 정부측은 설명했다. 한국내 근골격계 환자들이 산재 승인시 평균임금의 70% 외에 생계보조비 등을 더해 평상시 월급의 1백10∼1백30%나 받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디트로이트·워싱턴=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