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자민당에 2005년 11월까지 헌법 개정안을 마련토록 지시한데 이어 개헌대상 조항을구체적으로 거론, 갑작스런 개헌안 제기 배경을 놓고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제기한 개정 검토대상 헌법은 ▲전쟁포기와 전력보유 금지를명시한 9조 ▲중.참의원 구성을 규정한 43조 ▲공적자금을 사학(私學)지원 등에 쓸수 없도록 한 89조 등이다. 이중 고이즈미 총리가 제기한 개헌론의 핵심은 단연 평화헌법의 근거로 불리는9조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헌법 9조는 `육.해.공군과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을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자위대가 정말로 군대가 아니라 할 수 있느냐.자위대에는 전투력이 없느냐"고 반문하고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위대를 군대로 규정하고 `전력'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총리의 개헌론 제기를 놓고 일본 언론에서는 몇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먼저 내달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선거와 가을에 실시될 전망인 총선거를 앞두고당내 우익과 보수파를 끌어안으면서 야당들을 교란시기기 위한 선거전략이라는 해석이다.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간사장을 비롯한 자민당내 보수세력들은 헌법 9조 개정에 매우 적극적이다. 야마사키 간사장은 최근 `2005년까지 당의 헌법개정안을 마련하고 싶다'면서 `헌법개정안은 훌륭한 정권공약'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도 반기는사람이 적지 않다. 야당은 물론 맹렬히 반발하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민주당 대표는 "총재선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이용하려는 속보이는 속임수"라고 비판했다. 총리 자신도 헌법개정안 마련 지시로 파문이 일자 `재선되더라도 임기중에는 추진할 여유가 없다'며 한발 빼는 모양을 취했지만 이는 고이즈미식 `치고 빠지기'라는 지적이 많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중.참 양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에서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현재의 의석 분포로는 사실상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전종식후 일본의 분위기는 크게 변했다. 특히 걸프전쟁 이후 실시된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개헌 찬성여론이 호헌여론을 앞서는 양상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개헌안 마련 지시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 선거전략으로 이용하면서 동시에 국민여론을 떠보기 위한 애드벌룬의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헌론이 선거쟁점으로 부상하고 총선에서 자민당이 크게 승리하면 `임기중에는개헌을 추진할 여유가 없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주장에도 불구, 일본의 개헌논의는 급속히 현실성을 띨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본 언론들도 대체로 개헌론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사설에서 총리의 결단을 지지한다면서 (헌법개정을 위한)국민투표법은 언제, 헌법전문은 언제, 개정안 전문은 언제까지 마련하겠다는 일정을정권공약으로 명시하라고 촉구했다. 산케이(産經)신문도 자민당은 자주헌법 제정을 당헌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개정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총리가 헌법개정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한 것은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개헌안 마련지시가 총재선거에서 표를 얻으려는 의도에서비롯된 것이라면 개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너무 가볍게 다룬 것이라고 지적했으나개헌론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사히(朝日)신문도 헌법에 관한 논의는 환영하지만 총리의 과거 발언과 최근의처신을 보면 헌법개정 논의의 초점은 9조 개정에 맞춰져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지적하고 헌법개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게 되면 이라크 전과 같은 전쟁에 자위대가 참가하게 될 것이라면서 개헌이 기껏 미국이라는 보안과의 조수역할을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도쿄=연합뉴스) 이해영 특파원 lh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