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번 전시에는 그의 사후 30년동안 서울 종로구 동선동 작업실에서 잠자던 작품 20여점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석고틀에서 재현한 '여인',부조 '작품' 등으로 그의 사망 후에도 작업실을 그대로 보존해온 막내 여동생 권경숙씨가 이번에 특별히 내놓은 것들이다. 일본 도쿄예술원과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조각을 배운 권진규는 생후 재조명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그는 생전에 국내 조각계로부터 냉대를 받았다. 당시 조각계는 추상조각이 큰 흐름이었지만 그는 구상조각을 고집한데다 재료도 남들이 업신여기는 테라코타와 건칠이었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난 요즘 국내 조각품 중 권진규 조각작품을 최고로 치는 이유는 두가지다. 우선 탁월한 작품성이다. 그는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한국에서의 리얼리즘을 정립한 작가다. 권진규는 다양한 흉상을 제작했지만 대상 모델에서 이미지만 차용했을 뿐이다. 완성된 흉상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반영하면서도 비극과 구원의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다. 그는 1971년 한 인터뷰에서 "우리의 조각은 신라 때 위대했고 고려 때 정지했고 조선 때 장식화됐고 현재는 외국 것을 모방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는데 그가 한국에서 리얼리즘 정립에 전념하게 된 이유를 알리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술평론가 최열씨는 "1960년대 많은 조각가들이 돈이 잘 벌리는 조형물에 매달린 반면 권진규는 작업에만 몰두한 것도 그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의 하나"라고 말한다. 둘째 그의 작품은 희소성이 높다. 그가 남긴 조각품은 2백여점에 불과할 정도로 과작(寡作)이다. 게다가 대표작의 상당수를 유족이 갖고 있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지난해 경매에 나온 테라코타 '손'이 대표작이 아니면서도 3억3천만원에 낙찰된 것도 작품의 희소성 때문이었다. 9월15일까지.(02)736-1020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