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무슨 노동 전문가입니까.노조원들을 직접 관리해본 경험이 없는데….급조한 인물들로 노동참모를 구성하고….그러니까 나라가 우왕좌왕하는 거 아닙니까.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한때 전투적이고 과격한 노동운동을 이끌다 온건합리주의 노선으로 돌아선 배일도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53). 그는 요즘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는 참여정부의 노동행정을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세상이 바뀐 만큼 정부도 노조도 변해야 하는데 시대조류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 "이젠 변해야 삽니다.문명사적으로 보면 지금은 대전환의 시대입니다.옛날 산업사회 때의 사고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지요." 배 위원장은 노동운동 1세대로 노동계에선 대부격이다. 1987년 서울지하철노조를 설립해 초대위원장을 맡은 그는 88년 파업을 주도한 이후 두 차례 투옥과 10년간 해직생활을 하며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해직당한 뒤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전해투)를 결성해 극렬한 생존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88년 민주노총의 전신인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서노협)를 만들어 의장을 맡았을 때 단병호 현 민주노총 위원장이 그 밑에서 부위원장으로,참여정부 인수위원을 지낸 김영대씨(전 민주노총 부위원장)가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도왔다. 해직생활을 마감하고 98년 서울지하철에 복직한 그는 온건합리주의 노선을 내걸고 위원장에 출마,당선됐다. 과격 노동운동에 싫증을 느낀 조합원들이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해 돌아온 '옛 투사'를 선택한 것이다. 그의 노동운동은 이때부터 대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전투적 노동운동을 철저히 배격했고 상생의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데 전력투구했다. 우선 그는 사용자에게 거부감을 주는 붉은 머리띠와 투쟁구호가 적힌 조끼부터 벗어 던졌다. 파업 역시 그의 사전엔 없다. "파업을 한다고 더 줍니까.오히려 시민들로부터 비난받을 뿐이지요." 그는 현대자동차를 비롯 대기업노조가 매년 파업을 지속한다면 결국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대차요.지금은 경쟁력이 있어서 그런대로 버틸 수 있지요.하지만 파업을 밥 먹듯이 하면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월드컵을 앞둔 작년 4월 서울시 6개 대표 자격으로 무파업을 선언했을 때 지난달까지 청와대의 노동개혁팀장을 지낸 박태주씨(당시 전국연구전문노조 지도위원)와 벌인 논쟁은 노동계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씨는 주간지 노동정보은행에 기고한 글에서 "민주노동운동의 도도한 봄길에 벚꽃도 사쿠라꽃도 피어날 것"이라며 배 위원장의 노사 협조주의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그러자 배 위원장도 노동일보를 통해 "노동운동을 계급 대립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박 위원의 관점은 옳지 않다.양치는 목동처럼 1년에 서너 번씩 하는 총파업에 동의할 수 없다"며 투쟁적 노사관을 비판했다. 배 위원장은 요즘 산업평화의 전도사로서 협력적 노사관을 산업현장에 전파하기 위해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하지만 배 위원장도 가끔 파업을 무기로 사측을 위협,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라크전 때 파병반대를 이유로 파업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 "노동문제가 아닌데 너무 오버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을 뿐 열차를 세우자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임금 인상을 둘러싼 노사갈등은 거의 없다. 공기업 예산은 전년도에 이미 국회 승인을 받은 상태여서 더 많은 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은 국민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조합원이 1만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노조,그것도 툭하면 파업이 벌어지던 강성노조에서 초대와 9대,10대,현재의 11대까지 네 차례나 위원장을 지낸 배 위원장은 분명 대단한 인물이다. 명쾌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열정으로 무장된 그의 협력적이고 생산적인 노사철학은 혼란 속에 빠진 우리의 노사현장을 바른 길로 이끌 등불처럼 느껴졌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