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점검 2003 노동계 하투' 결산좌담이 지난 11일 한국경제신문사 회의실에서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이남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한 가운데 김병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의 사회로 열렸다. 재계를 대표한 박 회장은 노사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선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은 노사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했고 이 위원장은 '합리적인 세력의 설자리를 넓혀주는 정부의 자세와 정책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 참석자 ] 박용성 <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이남순 < 한국노총 위원장 > 김병주 < 사회: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 ----------------------------------------------------------------- △ 사회 (김병주 교수) =우리 경제에 영향력이 크고 그만큼 한국경제의 장래를 많이 걱정하는 두분을 모시고 최대 현안인 노사문제에 대해 말씀을 듣게 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현대자동차 노사 임단협을 놓고 재계와 노동계 모두 논란이 분분합니다. 박 회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 △ 박용성 회장 =현대차 직원 평균 연봉이 5천만원이 된다고 하는데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안됩니다. 회사가 많이 벌어서 직원들에게 많이 나눠 주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현대차가 복지수준을 높이는 만큼 자체 생산성을 높이면 좋겠는데 하청기업에 원가절감 등으로 부담이 전가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 사회 =이 위원장은 어떻게 보십니까. △ 이남순 위원장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최근 재계나 언론의 시각을 보면 노동자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데 안타깝습니다. 우리 경제가 여기에 오기까지 어느 경제주체(기업 및 정부)보다 더 많은 기여를 했다고 자부합니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우리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미국 일본 등의 불황과 북핵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또 정부의 내수경기 부양 정책이 부동산 투기와 카드 신용불량 등으로 한계점에 도달하면서 경기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차 문제도 노사간 협상의 결과이고 중재자인 정부도 있는데 협상결과를 놓고 노조에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현대차 노사도 현대차라는 기업이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하는데 현대차 노사의 자체 노력만으로 이뤄진게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합니다. 오래 동안 외국산 차 수입을 정부에서 막아주고 소비자는 수출단가보다 비싼 차를 사줬고 하청업체들이 싼값에 부품을 공급하면서 (현대차가) 커온 것입니다. △ 사회 =한국의 고도성장기에 대한 노동계의 공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높은 임금소득은 우리가 경제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목적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대공세 속에서 생산성을 크게 앞지르는 임금인상은 문제라고 봅니다. △ 박 회장 =섬유 신발 같은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이 중국으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고 포기할 것은 해야 합니다. 하지만 생산성에 비해 임금인상이 너무 가파르다보니 첨단 고부가제품을 만드는 생산공장까지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없고 경제는 저성장 수렁에서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인구 규모 등에 비추어 전통제조업을 첨단화해야지 중국에 이렇게 빨리 내줘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 주5일 근무제 ] △ 사회 =현재 노사간 힘의 균형이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하지만 최근 몇년간 전개돼 온 변화의 템포가 이대로 연장될 경우 경제에 너무 부담이 되는게 아니냐는 우려들이 많습니다. △ 이 위원장 =주5일제의 목표는 우선 일자리창출이고 그 다음은 삶의 질을 개선하자는 것입니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중 근로시간이 가장 깁니다. 중국 베트남 등도 하고 있는데 국민소득 얼마일 때 도입하자는 것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 사회 =주5일제를 하더라도 당장 임금을 낮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난제이므로 우선 제도부터 도입하자는 말씀인데. △ 박 회장 =전세계적으로 없는 월차 생리휴가 등은 이제 없앨 때가 됐습니다. 우리 노동시간이 길다고 하지만 휴일에는 임금이 1백50% 추가해서 나갑니다. 실제 생산현장에서 특근은 노동자에 대한 일종의 시혜로 쓰이고 있습니다. 주5일, 40시간제가 도입되면서 임금을 조정하지 않으면 현재 주42시간인 기업은 10% 임금부담이 높아지고 주44시간인 기업은 15%가 더 부담된다고 합니다. 이런 부담을 견딜 기업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 일자리 창출 ] △ 사회 =지금 우리 상황에선 삶의 질보다 일자리 창출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하지만 전체 노동계의 극히 일부인 대기업 노조들이 노동시장에 진입장벽을 쳐 청년실업 등이 더욱 심각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이 위원장 =중국보다 임금이 12배나 높다는 등 임금수준으로 얘기할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임금을 아무리 낮춰도 임금으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고임금시대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은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나라보다 주거비와 사교육비 부담 등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기업 부담은 늘지만 근로자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 아주 나쁜 구조입니다. 정부는 교육과 주거문제를 포함한 총체적인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와 같은 구조에선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 사회 =좋은 말씀입니다. 일자리는 결국 기업의 투자에서 비롯되는데 이번 현대차 합의안을 보면 생산라인 설치, 신차종 투입도 노조와 협의토록 돼 있습니다. 이런 사항에서 원활한 투자가 가능할까요. △ 박 회장 =청년실업이 심각한 것은 기업들이 기존 인력의 해고가 힘들어 신규 고용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노동계에선 중국과 임금경쟁을 할 시기는 지났다고 하지만 너무 많이 빨리 오르는 것은 분명히 문제입니다. 선풍기는 가도 되지만 노트북PC까지 벌써 가면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 살 겁니까. △ 이 위원장 =지금 직장을 그만 두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는 현실 때문에 노동자들이 고용보장에 연연하는 겁니다. 사회안전망만 제대로 갖춰져도 유연성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박 회장 =신입사원 임금이 1이라면 40대는 2.5~2.8 수준입니다. 이러니 기업들이 40대를 회사 밖으로 몰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임금피크제를 적극 검토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임금부담만 줄면 경험과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고 이는 회사에도 좋고 개인에게도 좋은 겁니다. [ 경영참여 ] △ 사회 =현대차 임단협을 계기로 노조의 경영참여 문제가 부각됐습니다. 유럽에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경영참여를 허용하고 있고 영미식은 경영참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데. △ 박 회장 =우리나라 근참법(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만 해도 근로자의 경영참여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노조 파워가 약한 일부 중소기업은 다르겠지만 대기업들은 사실상 노조와 경영전반에 대해 협의하고 있습니다. △ 이 위원장 =어떤 기업이 어느 정도의 경영참여를 개방하고 허용하는 것은 기업별로 노사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유한킴벌리 행남자기 등 기업경영을 공개해 노사가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며 성과에 대해 공정한 분배를 보장함으로써 실질적인 효율성이 증대되는 사례도 많습니다. 이런 기업은 노사분규도 없습니다. [ 경영권 강화방안 ] △ 사회 =최근 정부 일각에서 쟁의 조정기간 연장, 파업기간중 대체인력 투입 허용,노조근로자 부당행위 규제 강화, 파견근로자 요건 완화 등을 규정한 경영권 강화방안(대항권)을 검토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 위원장 =재계는 이미 대항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기업은 직장폐쇄를 할 수 있습니다. 노조가 파업하기 위해선 제약이 많고 민형사상 책임도 따릅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정부와 정치권이 경총 등 일부 재계주장만 듣고 대항권을 강화할 경우 노사관계를 대화와 타협이 아닌 대립과 적대적인 관계로 치닫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 박 회장 =재계로선 참여정부가 앞으로 4년반 동안의 노사문제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로드맵'을 빨리 내놓았으면 합니다. 정부의 정책기조가 확실하게 제시되면 노사 불안은 상당히 줄어들 겁니다. [ 바람직한 노사의 자세 ] △ 사회 =나라경제의 긴 장래를 생각할 때 우리 경제주체(정부 기업 노동자)들이 가장 절실하게 변화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이 위원장 =기업인이나 노동자들이 맨날 나라 장래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역시 정부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정부는 정책을 주도하고 중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정부가 중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모두가 지킬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원칙과 기준을 정해 일관성있게 지켜 나가야 합니다. 노사대립이 심각할수록 정부는 정책적으로든 심정적으로든 합리적인 세력의 설자리를 넓혀주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박 회장 =노사 평화는 룰을 국제기준에 맞게 만들고 그 룰을 지키면 저절로 찾아옵니다. 노사간 평화는 사장하고 노조위원장이 소주 한잔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측에 유리한 법이라도 글로벌스탠더드가 아니라면 다 바꾸는데 찬성합니다. 다만 일단 만들어진 '룰'은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정부도 어떤 경우든 법을 어기면 노건 사건간에 확실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정리=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