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거리에 큰 가마솥을 내걸고 죽을 쑤어서 도성안 백성들을 먹였다. 경회루 동쪽에는 초가집을 지어 그곳에서 기거했다." 이 얘기의 주인공은 역대 최고의 왕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이다. 그는 22세에 즉위한 뒤부터 7년 내리 흉년이 계속되자 백성과 고통을 함께 나누기로 결단을 내렸다. 임금이 초가집에서 지내자 대신들이 당황해 초가집 마당에 꿇어앉아 침전에 들 것을 호소했다. 왕비인 소헌왕후도 눈물로 말렸지만 임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신봉승 저,'성공한 왕,실패한 왕' 참조) 신문이나 방송이 없던 시절이니 이 뉴스가 국민들에게 곧바로 전달되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라도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의 마음은 따뜻해졌을 게 분명하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했지만 국민의 마음은 이런 식으로 얻을 수 있었다. 충효와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가치가 중시되던 옛날 얘기라고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건 리더십이다. 진심어린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고차원의 경영 행위라는 얘기다. 현대 경영에서 리더십은 날로 더 중요해지고 있다. 세상이 바뀐 까닭에 직위나 권위,혹은 돈으로 아랫사람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져서다. 예전엔 상사들이 정보를 독과점했다. 조직개편 윤곽을 아는 것만으로도 아랫사람들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인트라넷이 구축된 요즘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라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높은 자리'라고 해서 지레 얼어붙는 사람은 이제 없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인터넷 도마'에 오르면 난도질을 피할 길 없다. 남을 감화시킬 만한 인덕이 없다면,곁에만 있어도 감염될 정도의 열정이 부족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 조직의 장(長)들은 그래서 억지로라도 리더십을 기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서양 모두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리더십 덕목은 바로 솔선수범이다. 세종의 예처럼 몸으로 보여줘야 사람들은 믿고 따른다. 서구에서도 '모범을 보이는 리더십의 경제학(Economics of leading by example)'이란 제목의 논문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남들을 감동시킬 만한 것으로 모범을 보이는 일은 어렵다. 진실성이 없으면 오히려 역효과만 초래할 뿐이다. 상당한 고통도 따른다. 세종의 경우도 그의 부왕인 태종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총명한 머리로 여러가지 업적을 남긴 왕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세종의 삶은 고단했다. 재위기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년 동안을 상주로 지내야 했다. 12살난 딸(정소공주)을 잃는 아픔도 겪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맏며느리를 두 사람이나 폐출시키는 등 인간적인 고뇌도 많았다. 건강도 말이 아니었다. 각기병에 당뇨병까지 겹쳐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쯤에는 바로 앞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은 채 충심으로 자신이 나서서 모범을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따랐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은 어쩌면 리더십 위기인지도 모른다. 파업현장에 나타나 눈물로 호소하는 경영자가 없는 걸 보면 그렇다. 경제위기가 날로 심각해져도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를 숙이는 공직자를 만나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수십년 된 슬리퍼를 버린 여비서를 나무랐다는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남산에서 '꽁초 줍는 할배'로 더 유명했던 정수창 전 두산 회장,인수한 회사 사장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새우잠을 잤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 등은 '옛날 얘기'의 주인공일 뿐이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