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의 입사 14년차 A과장은 지난달 성과급으로만 4백90만원을 받았다. 지난해 성과급 1백80만원의 2.7배에 이른다. 올 상반기 회사가 1조6천억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이며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덕분이다. INI스틸도 지난 5월 임금협상을 타결지으면서 성과급을 통상임금의 2백%로 결정하고 이중 1백%를 미리 지급했다. 수주 풍년을 누리고 있는 조선업체들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직원들에게 성과급 휴가비 등 1천억원에 가까운 돈을 풀었다. 현대중공업 사업장이 위치한 울산시 동구의 식당 상점은 한산한 시내 중심가와는 반대로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회사 맞은 편에 위치한 현대백화점은 죽을 쑤고 있는 다른 지역 입점업체와 달리 초호황을 누렸던 지난해 매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위치한 인구 18만명의 거제도는 물가가 오르고 인구가 늘면서 부동산 개발 붐마저 일고 있다. 차량 등록대수도 상반기에만 5백여대가 늘었다. 이처럼 철강 조선 전자 등 일부 업종의 대기업들이 '표정관리'를 해야 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끼니'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내수위주의 노동집약형 중소기업과 금형 및 주물, 염색, 폐수처리 등 국내 대표적인 3D 업종들은 부도 직전에 내몰리고 있다. 인력난에다 국내 수요 부진이 겹치면서 공장가동률이 30%에도 못미치는 업체가 부지기수다. 이들 업체가 모여있는 경기도 반월ㆍ시화공단의 경우 지난 1월 2조1천5백50억원 수준이던 생산량은 6월에는 2조4백20억원으로 떨어졌다. 수출량도 같은 기간동안 4천만달러 가까이 줄었다. 완구와 인형업체 등은 올들어 문 닫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최근 실시한 '중소기업 경기전망조사'에 따르면 업황전망 건강도지수(SBHI)는 이달 76.3을 기록했다. SBHI가 기준치인 100을 넘으면 경기가 전월보다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는 업체가 더 많음을, 100을 밑돌면 그 반대를 뜻한다. 이 수치는 지난 11월 100 밑으로 떨어진 이래 매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신발과 가죽ㆍ가방 품목지수는 59.2까지 폭락했다. 이처럼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별로 확연히 드러나는 체감경기의 양극화는 수출과 투자의 괴리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올들어 지난 7월까지 수출은 지난해보다 17.3% 늘어난 1천47억달러를 기록하면서 4개월 연속 무역수지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설비투자는 지난 6월 반짝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아직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종 대표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으면서 '아랫목(대기업)' 경기가 '윗목(중소기업)'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부채를 지난해말 10조1천3백억원에서 올 6월말 7조7천8백억원으로 6개월간 무려 2조3천5백억원이나 줄였다. 상반기 3조4천억원을 투자비로 집행했지만 국내외 일부 장비업체만 '수혜'를 입었을 뿐이다. 철강과 조선은 공급과잉을 이유로 시설투자 대신 이익의 대부분을 빚 갚는데 사용했다. 포스코는 상반기 3천9백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했지만 현금성 자산은 오히려 9천3백억원 늘었다. 게다가 대기업들이 경기 불확실성을 이유로 회식 2차 금지, 골프 금지령 등 '마른 행주도 쥐어짜는' 긴축경영을 펼치면서 사회 전반적인 소비위축 심리는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필요인력만 경력직으로 소폭 채용하는 변화된 채용 패턴도 소비층의 감소로 이어지면서 내수업체들의 장기불황을 예고하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평균 임금격차가 1백만원을 넘어설 정도로 기업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소수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들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심기ㆍ고경봉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