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ㆍ플랜트와 중소 조선업체들이 기초 원자재인 후판(厚板ㆍ두께 3mm 이상 철판)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 설비 가동을 중단하는 등 '후판 파동'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등지로부터 웃돈을 주고 후판을 긴급 수입하고 있지만 수요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동아건설은 후판을 구하지 못해 고리원자력발전소의 크레인 설치 작업을 한 달째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방산업체인 로템은 2분기에 받기로 한 전차 제작용 후판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또 후판으로 파이프를 제작하는 세아제강은 원자재를 확보하지 못해 상반기에 한 달간 조업을 중단했으며, 동양철관 충주와 천안공장은 공장 가동률이 20% 밑으로 떨어졌다. 중소 조선업체도 마찬가지다. 신아조선은 이달 들어 원판 가공라인의 조업을 멈춘 상태이고, HSD엔진은 납품용 엔진 조립에 차질을 빚고 있다. 철강업계는 이 같은 후판 파동의 원인으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 조선사의 물량 선점을 지적하고 있다. '빅3'가 국제 시세를 크게 밑도는 가격으로 생산 물량의 절반 이상을 싹쓸이, 상대적으로 건설ㆍ플랜트 업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 게다가 세계적으로 후판 공급량이 절대 부족해 소량을 구매하는 이들 업체로서는 수입 물량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에서 후판을 생산하는 포스코와 동국제강 등 2개사의 올해 후판 생산량은 4백48만t. 그러나 국내 수요는 이보다 훨씬 많은 5백91만t에 달한다. 일본 등에서 들여오는 수입물량 1백25만t을 감안하더라도 18만t 가량이 부족한 상태다. 여기에 철강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수출 물량을 늘리면서 시중에서 후판의 '씨'가 마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우종합기계 등 일부 업체는 중국 현물시장에서 후판을 국내 가격보다 20% 이상 비싼 가격에 되사오는 실정이다. 대우종합기계는 포스코의 공급 물량이 예년의 절반 수준인 1천6백t으로 감소, 원자재 확보를 위해 t당 4백30달러(51만원)에 1만2천t을 긴급 수입했다. 기계산업진흥회 관계자는 "현재 기계업종의 후판 공급 부족량은 13만t으로 중소업체들의 경우 일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