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이라는 사회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발렌베리와 같은 오너기업 집단이 5대째 세습경영체제를 유지하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사회적 존경까지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더구나 발렌베리 계열사의 주식 규모는 스톡홀름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40%가 넘는다. 특정 기업집단에 경제력이 집중돼 있지만 스웨덴 국민들은 발렌베리가(家)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는커녕 스웨덴의 자랑으로 생각한다. 스웨덴의 자존심 '발렌베리' 스웨덴 국민의 발렌베리에 대한 애정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 스웨덴의 국가 경쟁력을 회복시킨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때 영국과 독일을 능가했던 스웨덴의 국력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상징되는 정부의 사회복지정책 강화와 이를 지탱하기 위한 고율의 세금정책으로 급격히 약화됐다. 특히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다국적 기업의 직접투자가 뚝 끊기고 자국기업조차 해외로 대거 빠져나갔다. 발렌베리그룹은 스웨덴 국민들이 느끼는 이같은 위기의식을 막아낸 마지막 보루이자 자존심이다. 2001년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경기의 호황 당시 주력계열사인 에릭슨은 핀란드의 노키아와 함께 스웨덴의 이미지를 첨단 IT국가로 바꾼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스웨덴 현지 언론들은 "배당과 시세차익에 집착하고 기업경영에 무관심한 주식펀드나 연금펀드와 달리 발렌베리가는 경영에 직접 참여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창업가 정신 발렌베리 가문 출신이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야 한다. 부모의 재정적 도움 없이 자력으로 스웨덴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단신으로 해외유학을 다녀와야 한다. 귀국 후 해군장교로 복무해야 하는 것도 필수코스다. 이를 통해 자기절제와 극기력을 기르고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인으로서의 자질을 검증받는 것이다. 높은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CEO의 제 1조건이다. 현재 발렌베리 그룹을 이끌고 있는 창업자의 5대손이자 사촌관계인 마르쿠스 발렌베리와 야곱 발렌베리 모두 이러한 '정규 코스'를 거쳤다. 야곱 발렌베리는 일렉트로룩스 이사회 멤버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계열사의 최고경영자 및 이사회 의장 임면과정에 개입하고 계열사의 경영전략을 감독한다. 특히 그룹의 전략적 의사 결정을 내리는 지주회사 내 '이너 휠(Inner Wheel)'이라고 불리는 5인의 소위원회에는 발렌베리 가문 출신이 3명이나 참여하고 있다. 안정된 경영권과 세계적인 경쟁력 발렌베리그룹은 가족 소유의 재단과 인베스터AB라는 지주회사를 통해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모두 3개 재단이 인베스터AB의 지분 21%와 의결권 45.2%를 갖고 있다. 지분보다 의결권이 많은 것은 차등의결권 제도 덕분이다. 스웨덴 정부는 자국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적대적 M&A(인수합병)를 방어하기 위해 이 제도를 두고 있다. 인베스터AB가 보유한 일렉트로룩스 지분은 5.3%에 불과하지만 실제 의결권은 22.4%에 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인베스트AB는 이같은 제도적 뒷받침을 받는 대신 배당금의 절반 이상을 학교와 과학기술연구에 재투자하고 있다. 우호적 기업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